대학 시절 미국 유학 중인 선배에게 간략한 안부 편지를 보냈다가 답장을 받고 편지의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 평소 깊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유학 초기였던 그가 꽤 고생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 정을 나누고 싶어 보낸 편지였다.
그러나 답장을 받고 보니 내가 보낸 작은 정을 그는 결코 작지 않은, 깊은 정으로 여겼었다. 선배는 “자네의 편지는 논산 훈련소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중 첫 편지를 받고 느꼈던 감격과도 같았다”고 썼었다. 어려웠던 당시 그의 처지와 나의 안부를 받아들인 심정이 강렬하게 전달되면서 뭉클했던 기억이다.
■전화 통화로 안부를 주고 받았다면 두 사람 사이에 이런 감동이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말과 글은 이렇게 감동의 맛과 깊이, 질감이 다르다. 편지를 통해 주고받은 사람 사이의 진정은 질긴 끈이 된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몽롱한 감정 세계를 고독한 자리에서 깊이 반성하고 재확인하며 확충시키고 세련시키는 일이다.
말로써만 주고받거나 분위기로써만 맺어진 우정이나 사랑과, 편지를 통하여 성숙시킨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자가 한결 질기고 정련된 것이다.” 박목월의 편지예찬론이다.
■편지는 엉뚱한 일화들도 많이 만든다. 독일의 작곡가 하이든에게 편지는 불행의 징표였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던 그는 만년에 부인과 별거까지 했다. 집을 찾은 한 손님이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봉투다발을 보고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처의 편지들인데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데, 처도 내 편지는 보지 않을 테니”라고 답했다고 한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낭비벽이 심한 손자가 생일선물로 돈을 요구하자 “사치는 죄악이니 검소해라”는 친필 편지를 보냈다가 “할머니의 편지를 5파운드 받고 팔았다”는 답신을 받았다는 얘기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편지가 논란이다. 그는 올 들어 10차례, 최근 열흘 새 4차례나 자필 편지를 띄웠다. 노 대통령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랄 수도 있지만 이런 형식의 대통령의 글은 단순한 사견으로 치부하기도, 공식 정책으로 인정하기도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가장 크다.
더구나 판을 바꾸려는 정치구도에 관한 생각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다른 정파를 계속 자극하니 그 자체로 정쟁인 판이다. “대통령의 편지를 반긴 국민은 없었다”며 서신 중단을 ‘요청’한 야당의 논평이 또 하나의 일화가 될 듯 싶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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