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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신선한 생선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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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신선한 생선사나이

입력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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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은씨의 2000년 신춘문예 등단작 ‘프레시 피시맨’은 판자 떼기 궤짝(학교 또는 세상)에 갇힌 채 튀어 나온 못에 찔릴 새라 “어째서 이곳에 이렇게 모이게 되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는 생선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다.

제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는 어린 날 넘어져 까진 무릎에 약 발라주고 사탕을 물려주던 엄마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는, 지독한 외로움의 이야기다.

그렇게 상처에 집착하던 친구는 끝내 숨지고, ‘나’는 그의 뼛가루를 욕조 배수구에 풀어놓는다. “저 음습한 곳, 어두운 곳. 하수구 파이프를 따라 녀석이 한 마리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며 사라져갔다.”

작가의 이 첫 소설집은 상처와 흉터를 통해 추억하고 상상하고 재편한 ‘프레시 피시맨’들의 삶을 다양한 느낌으로 전하는 9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그 상처와 흉터는 정신적 물질적 결핍, 환경에 대한 설명되기 힘든 적의(敵意), 소통 부재의 고통 등이다. 그들은 자폐한, 또는 환경에 의해 구금된 존재들이다.

갇힌 자들의 이야기에서 ‘틈’은 다양한 상징으로 변주된다. ‘프레시 피시맨’에서 궤짝의 틈이 탈출의 희망이었고 욕조의 배수구가 영혼의 자유 유영을 가능하게 했다면, 고단한 지하철 행상의 일상을 담은 ‘쎄일즈맨의 하루는’에서 그 틈은 미로 같은 일상의 신기루다. “저 문밖에는 지금 이 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또 한 칸이 있을 뿐이고, … 전혀 다르지 않은 무심한 사람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뿐…”(62쪽)

반면 24살 주인공이 “홀리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겪는 “전혀 ‘메리’하지 않”은 일들과 그 해의 고달픈 마지막 밤의 이야기인 ‘스물다섯의 그래피티’에서 그 ‘틈’은 바깥 세상을 경계하는 감시의 틈이다.

오랜 만에 연락해 온 고교 동창의 일(살인)에 공교로이 얽혀 도망자가 된 ‘나’가 도로변 휴게소 화장실에 앉아 갉작대는 생각 한 토막이다. “그간 난 언제나 문을 닫아두곤 했는데,…하지만 이제 난 문을 열어놓지 않나. 나만의 공간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령 있다 해도 이젠 조금의 틈이라도 내 바깥을 경계해야만 한다는 것을…”(198쪽)

‘틈’이 탈출과 해방의 비상구가 되진 못함을 아는 이들은 실재와 환상, 고통과 해방의 모호한 경계지대로의 망명을 꿈꾼다. “물감과 물이 만나는 곳, 색과 색이 맞닿은 곳의 모호함.

그 어지럼증이 무척 좋”다.(86쪽) 유년의 상처로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메모리’의 주인공 ‘나’의 꿈은 그림에서 ‘날개 달린 자동차’로 바뀐다. “차창으로 지나치는 풍경만으로 물과 물감이 만나는 그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는 속도에의 집착이다. 또 그것은 ‘…그래피티’의 그들이 여정의 끝에 닿게 되는 바다의 이미지와도 겹쳐 있다. “(바다가 편안한 것은) 그것이 끝이며 동시에 시작이기 때문 아닐까. 그 모호함이 드넓게 펼쳐진 곳.”(207쪽)

이미 12살 꼬마 때부터 “갤러그의 조종간을 잡고 우주전쟁에 참가하는 쪽이 포크레인 소리를 견뎌내거나 공장의 매캐한 연기에 숨막혀 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한 일”(‘미확인 비행물체’ 273쪽)임을 깨우친 이 조숙한 악동들이 20대로 자라 “경제살리기? 까짓 거.

싸그리 벽돌로 쳐죽여버려”(204쪽)라고 외쳐본들, 또 세파에 닳고 삭아 ‘새카만 비닐봉지 속 금붕어 두 마리’처럼 살고싶다는 가난한 꿈을 꿔보지만 그 조차 “소주 두 잔 반 만에 눈물 나는 꿈”일 뿐이니…. ‘…그래피티’의 화자는 훌쩍 나이가 든 어느 날 갓 25살이던 그 날을 떠올린다. “여행은 이미 그 때 끝났으니 이제 내겐 기다리는 일만 남았을 테다. 어쩐지 아직도 그곳엔 무언가 남아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잊어야겠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쓸쓸해지기로 했다.”

작중 인물들의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화법은 읽는 동안 불쑥불쑥 웃음을 솟구고, 서글픔과 어울리지 않는 그 웃음의 새퉁스러움에 화들짝 놀라 다시 헛웃음을 짓게도 만든다.

그렇게 종작없이 감정을 희롱 당하다 책장을 덮는 순간, 이야기들이 은근히 집요하게 쏘아댔던 어떤 질문이 아프게 다가설지 모른다. 그렇다고 허둥대지는 말자. 대답은 ‘조금, 아주 조금 쓸쓸해진 뒤’ 생각해도 늦지 않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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