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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낙하산 논란의 씁쓸한 뒷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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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낙하산 논란의 씁쓸한 뒷맛

입력
2005.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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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설화 가운데 과거 보러 가다 목숨을 구해준 사슴이 꿈에 나와 알려준 덕에 과거 급제하고 영화를 누렸다는 얘기가 드물지 않다. 어릴 적 턱 괴고 할아버지께 들었던 얘기를 되새겨 보면 실은 시험문제유출 같은 부정행위를 미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고약한 의심이 들기도 한다.

수면학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뭔 염력으로 꿈 속 사슴에게 그것도 시제(試題)를 얻어 듣는다는 말인가. 다른 합격자의 답안지에 이름을 바꿔 붙여 부정 합격하는 절과(竊科)니 대리 시험인 대술(代述) 등 별의별 사술이 동원되었다는 사실(史實)을 접하면 허무맹랑한 상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의 참화나 광주학살의 야만성에 비하면 거의 기적 같은 발전에 경탄하며 외국인들이 곧잘 성공비결을 묻는다. 우리보다 형편이 훨씬 좋던 많은 나라들이 한참 처져 허덕이는데 어찌 성공했느냐는 물음에 서슴없이 손꼽는 대답이 있다. 입시에서 국가고시에 이르는 시험의 사다리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 공정하게 작동했다는 것이다.

싸잡아 비난도 문제지만…

논란의 매연에 휩싸이곤 하지만 상대적으로 건전하고 안정된 사법제도, 하도 철밥통 소리를 들어 귀가 멍멍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선진국 못지않게 손색없는 공무원제도, 이런 것들이 그나마 이 정도 발전을 구가하게 해준 제도적 인프라가 아니었던가.

거기에는 공직의 등용문이 공정해야 한다는, 신념에 가까운 대중의 요구와 등용문을 통과한 인재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 신뢰라는 사회적 토양이 있었다.

최근 공기업사장과 장관 인사를 둘러싸고 불거진 낙하산인사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는 그런 풍토에 뿌리를 둔다. 엊그제 낙선한 정치인들을 공기업사장으로 앉히는 걸 보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낙하산’이란 말은 인사 전횡이나 비리를 연상시키는 대단히 강력한 상징이다.

의도가 무엇이든 야당이나 언론이 그 말을 듣기 민망할 만큼 애용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낙하산 인사란 ‘외부에서, 전문성 등 자격이 없거나 부적합한 자를, 밀실에서 또는 자의적으로 선발하여’ 찍어 누르는 것을 가리킨다. 곰곰 따져보면 장관인사에 낙하산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내부인사가 정도라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아웃소싱이니 참신한 리더십을 가진 외부인사 영입을 환영하지 않았던가. 다른 맥락에서였다면 참신하다는 칭찬을 받았을 법한 인사도, 미운 털이 박혀서 또는 중앙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낙하산 부대라 한다면 그만큼 부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갖은 수사와 이론으로 입씨름을 벌이면서도 정작 국민의 복리후생에 어떤 인사가 적합하며, 무얼 가지고 인사의 당부를 평가할 것인지 아무 얘기가 없다는 데 있다.

국민은 어떤 사람을 어느 부처, 어느 공기업의 장으로 앉혔더니 전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는지 믿을 만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한 결과를 알고 싶어 한다. 성과평가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선은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히는지, 공정한 인사인지 낙하산인지 주목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의 의심은 공직의 정치적 남용에 대한 이유 있는 경계심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한 지역의 패장에 대한 유인보상 차원에서 영남 인사들을 중용하는 것이라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차기 선거를 위한 경력관리나 재충전 기회를 주려는 의도에서 기용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여긴다.

국민여론 무시는 더 안돼

각료임명이나 공기업사장의 외부영입 인사 모두를 한꺼번에 싸잡아 ‘낙하산 인사’니 ‘낙선정치인 구제 케이스’니 ‘동문 배려’니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모름지기 선거는 잔인 무도하다.

좋은 사람도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정략적 공직인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반대 여론을 마냥 실상 모르는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다. 국민이 보고 있는데, 자기들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니 답답하다. 뒷맛이 영 씁쓸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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