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의 법수(法水)가 흐른다는 맑은 계곡, 강원 양양의 법수치리. 오대산과 응복산의 골짜기를 타고 연어의 탯자리인 남대천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다.
법수치리는 오지중의 오지였다. 매년 겨울이면 폭설로 고립되는 깊은 골짜기다. 2002년 태풍 루사땐 최후의 고립 지역으로 주목을 받았던 곳. 길도 다 쓸려 내려가고 집도 많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 루사 탓에 복구 공사로 자갈 투성이던 마을 진입길이 신작로로 포장됐다. 그리곤 그 새 길을 따라 알록달록 펜션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물에 반쯤 잠겨진 바위는 방금 채석강에서 캐낸 것처럼 날선 차가운 빛이다. 맑디 맑은 물이 씻어낸 바위빛. 계곡은 옛 계곡 그대로지만 더 이상 ‘오지’의 냄새가 나질 않는다.
손때 묻지 않은 청정의 땅에 대한 기대는 아쉬움으로 커져 발길을 더욱 깊숙한 산속으로 향하게 했다. 법수치리 주민들도 자주 찾지 않는다는 ‘광불동 계곡’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법수치리 물길로 이어지는 광불동 계곡은 팔밭무기교에서 오르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숲이라 초록의 빛이 깊다. 물길을 따라 계속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초입에 나리꽃이 길가에 서서 인사한다.
몇 걸음 걸으니 바닥에 콩 같은 까만 점들이 후두둑 떨어져 있다. 하나 들어보니 포도 송이를 잔뜩 축소해놓은 모양이다. 뽕나무 열매 오디다.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까만 열매가 빽빽하다.
늘어진 가지 하나 잡아당겨 열매를 따 먹으니 달콤함이 입안 전체를 휘감는다. 단맛이 마치 박하 향처럼 화하게 번지는 느낌이다.
노란색의 기린초가 주위에 꽃밭을 이루고 물소리 매미소리가 귓볼을 울린다. 오를수록 길은 더욱 좁아들고 가랑이를 스치는 풀섶엔 빨간 뱀딸기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다.
흰색의 까지수영, 보랏빛의 싸리꽃, 분홍빛의 노루오줌에 수줍게 고개숙인 금낭화까지 산길은 야생화 전시장이다. 산딸기도 오디 만큼이나 지천이다. 단맛 뒤의 시큼함이 어금니 뒤로 한움큼 침을 고이게 한다.
발목을 휘감는 잡초, 이마를 스치는 나뭇가지. 그 뜨겁던 태양도 초록에 가려져 비치지 않는다. 그저 충만한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올 뿐이다.
물길은 그 폭이 좁다. 하지만 그 아기자기함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만만치 않다. 높은 산이 바다로 내리 치달았으니 경사가 급할 수 밖에. 낮은 폭포들이 10단, 20단으로 이어졌고 작은 소(沼)들이 보리수 열매 염주 꿰이듯 연달아 늘어섰다.
물길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발목을 다칠 수도 있다. 흙을 덮은 낙엽의 층이 높아 발이 생각보다 깊이 빠져든다. 쑥쑥.
한 시간 가량 오르면 한길 높이의 제법 큰 폭포를 만난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사하는 물길이 황홀하다. 이 산길을 계속 타면 응복산으로 오를 수 있지만 가벼운 트레킹이라면 이곳까지가 적당하다.
낚시를 좋아한다면 법수치리로 나와 계곡에 낚시대를 드리울 일이다. 은어와 꺽지, 연어가 지천인 낚시의 천국이다. 요즘은 꺽지가 제철이다. 루어낚시가 일반적이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로버트 레드포드를 흉내내며 휘휘 낚시줄을 공중에 뿌려대는 플라이 낚시꾼도 제법 많다.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418번 지방도로를 타고 11km 가량 달리면 어성전을 지나 법수치리다. 국내 답사 전문 여행사인 승우여행사가 법수치리 광불동 계곡 트레킹 상품을 내놓았다. 매주 토, 일요일 출발하며 참가비는 3만8,000원. (02)720-8311
양양=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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