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근무제 확대로 가족단위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유통업체들이 교외형 쇼핑센터 개발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몇 년 후면 도심을 벗어나 시 외곽에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꾸며진 대형 쇼핑센터가 붐을 이룰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0여년 전에 등장한 교외형 쇼핑센터가 포화상태에 이른 백화점과 할인점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교외형 쇼핑센터로 꼽히는 미국 뉴욕의 우드베리 아웃렛과 일본 도쿄의 오다이바(台場) 쇼핑센터를 찾아 한국 유통업의 미래를 들여다 봤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펠리세이즈 파크웨이를 타고 가다 6번 도로로 빠져 1시간 가량 올라가면 같은 색 같은 모양의 집 10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숲 속의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한국 관광객이 빠지지 않고 들른다는 ‘우드베리 커먼 프리미엄 아웃렛’이다. 겉보기엔 여느 미국의 베드타운과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평일 낮에도 수백대의 승용차가 붐비는 뉴욕 인근 최대의 교외형 쇼핑센터다.
우드베리 아웃렛은 중앙에 자리잡은 푸드 파빌리온을 중심으로 샤넬 구찌 페라가모 버버리 등 240여개의 세계 유명 브랜드 아웃렛이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다. 지난달 29일, 여름세일을 이틀 앞둔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과 방학을 맞은 학생들로 주차장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디즈니랜드에 버금갈 정도로 큰 규모인데다 벤치를 비롯한 휴게공간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큰 혼잡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두번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쇼핑을 즐긴다는 매튜 스워드(67)씨는 “시내 백화점처럼 혼잡스럽지 않고, 공원에서 쉬는 기분으로 쇼핑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우드베리 아웃렛뿐 아니라 뉴욕 도심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주택가 롱아일랜드 인근에는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곳마다 대형 쇼핑몰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 우드베리 아웃렛을 인수한 미국의 부동산개발 전문업체 ‘사이먼’사가 운영하는 교외형 쇼핑몰만 뉴욕 인근에 10여개에 달한다.
이중 올드 컨트리로드에 위치한 ‘루즈벨트 필드’는 블루밍데일, 메이시스, 노드스트롬, JC페니, SAKS 5TH 에비뉴 등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 아웃렛 매장과 GAP, H&M, 아베크롬비 등 100여개의 패션 매장이 들어선 대형 쇼핑타운이다. 맨해튼뿐 아니라 퀸즈, 브룩클린 등 뉴욕 전역에서 찾아오는 쇼핑객들로 연일 만원을 이룬다. 이곳에서 차로 5분만 이동하면 할인점 월마트와 코스트코홀세일, 인테리어전문업체 홈디포, 가전전문숍 베스트바이 등과 극장체인 로이스 등이 한데 모여있는 대규모 복합쇼핑몰이 나타난다.
맨해튼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루시 루(30ㆍ여)씨는 “뉴욕 도심의 백화점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늘 시간에 쫓기며 쇼핑을 하기 마련”이라며 “주말에 남편과 함께 시 외곽을 돌며 쇼핑하는 것이 생활의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 신바시(新橋)에서 ‘유리가모메’라 불리는 모노레일을 타고 15분 정도 가면 인공섬인 오다이바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미국의 금문교를 본 따 만든 레인보우브리지와 자유의 여신상, 후지TV 본사 등이 자리잡고 있다. 섬 전체가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도쿄 인근에서 젊은 층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오다이바에 자리잡은 쇼핑몰은 모노레일을 경계로 북쪽 해변공원에 자리잡은 덱스도쿄비치ㆍ아쿠아시티와 남쪽 팔레트타운에 자리잡은 비너스포트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곳은 비너스포트. 오다이바의 명물인 대관람차를 경계로 도요타 자동차전시장과 마주보고 있는 비너스포트는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은 이탈리아다. 건물에 들어서면 중앙에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본 따 만든 분수광장과 하루에 3번 색이 바뀐다는 하늘 모양의 천장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오렌지, 그린, 브로드 에비뉴’로 명명된 3갈래 길을 따라 걸으면 양편으로 DKNY, 디젤, ZARA 등 외국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즐비하고, 3층에 늘어선 레스토랑의 발코니에서는 가족과 연인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에는 선물을 준비하거나 파티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려 다리 위에서 차가 2~3시간 이상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 있는 교외의 쇼핑 명소다.
도쿄ㆍ뉴욕=신재연 기자poet333@hk.co.kr
■ 日 오다이바/ 섬전체가 쇼핑+오락 ‘테마파크’
도쿄 인근의 인공섬 오다이바는 섬 전체가 테마파크다. 도쿄와 섬을 잇는 레인보우브리지와 도쿄항 해변공원이 만들어내는 풍광도 좋지만, 대관람차, 후지TV 구체전망실, 배 과학관 등 각종 놀이ㆍ관광시설과 쇼핑몰이 함께 자리잡고 있어 가족단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레스토랑과 각종 놀이시설이 밀집한 쇼핑몰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족형 놀이 공간이다. 덱스도쿄에는 조이폴리스 등 실내형 게임 테마파크와 홍콩의 명소들을 그대로 축소해 옮겨온 ‘다이바쇼홍콩’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쿠아시티에는 13개의 영화관 체인 ‘시네마메디아주’가 입점해 있다. 동화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어드벤처랜드 ‘와일드 싱스’와 가상공간 체험을 할 수 있게 꾸민 ‘에어타이트 가라주’ 등 각종 놀이시설도 갖춰져 있다.
교외형 쇼핑센터의 등장은 주5일 근무로 인한 여가의 확대, 차량 보급률 증가, 전국의 도시화, 생활 주거지의 교외화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성패의 열쇠는 쇼핑과 함께 얼마나 많은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제공해 늘어난 여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다이바가 연간 3,600만 명이 오가는 쇼핑과 관광의 명소로 자리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명암이 갈린 일본의 대표적 유통업체 다이에와 이온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온은 일본에 주5일근무제가 도입된 1980년대부터 외진 땅을 헐값에 사들여 각종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교외형 쇼핑몰을 개발해 나갔다. 반면 다이에는 도심에서 망해가는 백화점들을 차입을 통해 공격적으로 인수해 덩치를 키워나갔다. 그 결과 이온은 현재 교외형 쇼핑몰에서만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올리는 대형 유통업체로 성장한 반면, 다이에는 지난해 10월 부도를 맞았다. 국내 대형 유통 업체들이 앞 다퉈 교외형 쇼핑센터 개발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신재연기자
■ 한국업체의 준비상황
교외형 쇼핑센터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우드베리 아웃렛과 같은 교외형 아웃렛과 여러 백화점과 전문점 체인을 한데 모은 미국식 쇼핑몰, 백화점이나 할인점을 중심매장(앵커)으로 두고 기타 브랜드 매장을 오픈하는 일본식 쇼핑몰 등이다.
국내에는 일본식 쇼핑몰과 아웃렛 사업이 먼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5월 우드베리 프리미엄 아웃렛을 개발한 미국 첼시 프로퍼티 그룹과 합작, ㈜신세계첼시를 설립했다. 경기 여주에 아웃렛 1호점을 내고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점포를 낼 계획이다. 미국 2위의 아웃렛 업체 ‘프라임’도 국내에 진출하기 위해 타당성 검토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개발이 대규모 레저단지 개발을 추진중인 천안 복합단지(22만평 규모)가 유력한 부지로 꼽히고 있다.
최근 쇼핑몰 사업부문을 확대 개편한 롯데쇼핑 역시 서울 양재동 물류센터 등을 아웃렛으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일본식 쇼핑몰 사업을 펼치기 위해 일본의 이온사와 제휴방식을 협의 중이다. 롯데쇼핑은 자체 소유하고 있는 김해ㆍ장유 신도시 땅을 부지로 활용할 방침이며 이달 말 공고될 예정인 1만 5,000~2만 평 규모의 김포공항 주차장 부지 입찰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내 2만3,000평의 부지개발사업권을 낙찰 받은 신세계 역시 2007년 말 개장을 목표로 백화점, 영화관, 할인점, 전문점, 아쿠아리움 등을 갖춘 초대형 복합 쇼핑몰의 설계작업에 들어갔다.
신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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