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첫번째 공격 후 먼지가 뿌옇게 덮인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부들부들 공포에 떨고 있는 톰 크루즈의 모습은 테러 직후 뉴욕 시민의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9ㆍ11 이후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재난영화 제작기피 분위기를 깨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선보인 영화 ‘우주전쟁’에서는 평범한 미국인이 당면한 바로 그 때와 같은 혼란을 엿볼 수 있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거리를 내달리며 미국인들은 말한다. “우리만 당했다. 유럽과 아시아는 괜찮다더라.” 피해의식 같은 것이다.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영웅은 없다. 비장한 얼굴로 사태 수습을 논의하고 출격 명령을 내리는 대통령도 없다. 시민들은 무기력하게 당할 뿐이다. 그러다 외계인은 저절로 최후를 맞는다. 때문에 지구인 대 외계인의 대결투 식을 예상했다면 잘못이다.
거창한 제목과 달리 영화가 시종일관 주목하는 부분은 부성이다. 항구에서 컨테이너 하역 작업을 하는 노동자 레이(톰 크루즈)는 아버지 역할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혼한 전처가 키우고 있는 자식들의 방문에도 귀찮을 뿐이다.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이 땅콩 알러지가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무심하다.
레이가 쓰고 있는 뉴욕 양키스 모자와 아들 로비가 쓰고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 모자가 그 감정적인 거리감을 말하는 듯 하다. 외계인의 침공에 레이는 자식들을 데리고 엄마가 있는 보스턴으로 향한다. 레이에게 공포는 외계인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인 듯 하다.
외계인의 침공까지 들먹이며 부성 확립 과정을 다룬 것은 의미심장하다. 과거의 잘못이 있다면 이제라도 보상하면 된다는 식으로 강한 아버지로서의 미국을 기대한다. 스필버그 감독의 전작 ‘터미널’이 테러 이후 유토피아로서 미국에 대한 갈망을 그려냈다면 ‘우주전쟁’은 정반대의 암울한 부분을 다룬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외계인을 피해 도망하는 레이 가족이 처한 철저한 단절감이다. 1898년에 출간된 동명소설의 2005년 버전이지만 이들에게 첨단 문명 기기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흔한 휴대 전화도 없고 TV나 라디오의 재난 방송도 없다. 911에 구조요청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도움이 되는 것은 자동차와 총 뿐이다. 레이 가족이 지닌 차와 총을 빼앗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모습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첨단기기가 아니라 결국 아버지, 또는 가족의 힘이라는 결론을 강조하고 있다.
개봉 전 철저히 비밀에 붙인 영화 속 외계인의 모습은 너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좀 싱겁다. 하지만 번개가 내려친 후 땅이 들썩 들썩하며 외계물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부터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펼쳐지는 실감나는 재난 장면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원제 ‘War Of The Worlds’. 7일 개봉. 12세.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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