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00만 관객 시대를 열며 거침없이 내달리던 한국영화에 경고등이 켜졌다.
거액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와 스타 감독, 스타 배우의 작품마저 관객에게 외면받고 있는데다 투자ㆍ제작사들은 날로 악화하는 수익률에 신음하고 있다.
2,600여억원이나 풀려나간 영상펀드가 대부분 연말 상환만기를 앞두고 있고, 스타 파워를 앞세운 매니지먼트사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면서 충무로에는 확연하게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어두운 수치들
최근 발표된 여러 수치들은 한국영화의 위기를 실감케 한다. 극장체인 CJ CGV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관객수는 6,284만1,58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감소했다. 관객수가 하향세로 돌아선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영화 점유율도 같은 기간 13%포인트나 주저앉아 55.8%를 기록했다.
아이엠픽쳐스가 내놓은 시장 분석도 우울하다. 6월 관객수는 322만3,930명으로 지난해보다 14.8%나 감소했고 5월에 비해서도 2.2% 줄어들었다.
지난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초대형 흥행작이 없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영화가 시장에서 조금씩 비켜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90억원을 쏟은 ‘남극일기’, 65억을 들인 ‘달콤한 인생’, 60억원을 투자한 ‘주먹이 운다’ 등 상반기 기대작들이 줄줄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간판을 내렸다. 평균 제작비는 숨가쁘게 상승하고 있지만 영화산업의 근간인 투자ㆍ제작사들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며 흔들리고 있는 것도 충무로 위기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위기인가 조정인가
곳곳의 경보음에도 대부분 영화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아직은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반기는 전통적인 비수기인데다 지난해 소비 경기 침체의 영향이 뒤늦게 반영됐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조심스러운 분석가들도 하반기에 기대작들이 더 많이 포진하고 있기에 상반기의 성적만으로 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는 입장이다. 곽신애 LJ필름 이사는 “장동건 정우성 전지현 전도연 등 ‘티케팅 파워’를 가진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는 모두 하반기에 몰려있다.
박찬욱 허준호 곽경택 감독 등이 연출하는 작품들도 하반기에 개봉한다”며 “이들 작품의 흥행 결과에 따라 한국영화의 위기를 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양산되는 스타위주의 기획영화가 관객들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불안정한 제작시스템이 영화산업의 발목을 곧 잡으리라는 불안한 시각도 만만치 않다.
노종윤 노비스 대표는 “제작자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기획의 힘이 떨어지고 있다”며 “지금 만들어지는 콘텐츠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영화산업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2년이 고비
한국영화는 이제부터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게 될 것이다.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콘텐츠 확보를 노린 이동 통신사들의 충무로 진출이 이미 가시화됐고, 매니지먼트사가 제작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이에 따른 시장 조정기간을 2년 정도로 보고있다.
영화산업이 지금과는 다른 수익창구를 개발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 관건이다. 심재명 MK버팔로 이사는 “관객수 감소는 누가 뭐래도 부실한 콘텐츠가 원인”이라며 “앞으로 1, 2년의 격동기 속에서 결국은 내용적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여부가 한국영화 산업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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