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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상] 나 어릴적 신던 운동화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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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상] 나 어릴적 신던 운동화는 어디에

입력
2005.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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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신발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미술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다. 학원에 가기 전에 현관에 놓여 있는 주황색 운동화와 갈색 구두를 보고 고민하다가 하나를 골라 신고 길을 나섰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스웨터와 바지를 입고 말이다.

한참 걷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문득 시선이 발로 갔다. 아뿔싸! 한쪽은 구두, 다른 한쪽은 운동화를 신고 간 것이었다. 당당하게 걸었던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고 남은 길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가방으로 발을 가리고는 간신히 학원에 도착해 누가 볼세라 신발을 신발장 보이지 않는 구석에다 집어넣었다.

양말만 신고 돌아다니는 학원에서야 걱정이 없었지만 집에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결국 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폭소가 어찌나 민망스럽던지. 엄마 손을 붙잡고 돌아가는 내 한쪽 손엔 학원 가방과, 비닐 봉지에 담긴 주황색 운동화가 있었다.

주황색 운동화는 그 이듬해 봄날 남동생이 버리기 전까지 내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신발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에 고무창이 붙어 있는 운동화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걸 신으면 멋을 좀 부린다는 아이들 그룹에 끼인 듯 싶었고, 어른스러워지는 느낌도 들었다.

어느 초가을 날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에 엎어져 숙제를 하는데 여섯 살 난 남동생이 살그머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고 마루로 나와 보니 내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누나 신발을 신어보고 싶었나 보다’ 생각하고 숙제를 계속 하고 있는데, 곧 남동생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신발을 신은 동생은 빈손이었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남동생은 그 신발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 놀이터 근처에다 얌전하게 놓아뒀다는 것이었다! 혼비백산해 나가 보니 이미 신발은 사라져 버린 뒤였다. 낮에 고물상 아저씨가 지나가셨다니 신발을 찾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했다. 남동생을 닦달했더니 자기도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서정주 시인은 어릴 때 떠내려간 신발 한 짝을 대신해 받은 새 신발이, 그리고 신발을 신는 자신이 대용품 같아 무언가 잃어버린 허전함에 시달렸다고 노래했다.

그때 신발을 잃어버린 뒤 내게는 물건에 애착을 두지 않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볕 좋은 오후 작은 방 창문을 통해 보이는 놀이터로 난 길을 볼 때마다, 반짝이던 햇살 속에 사라진 내 예쁜 운동화를 생각해 본다. 아쉬움이 담긴 운동화는 누구의 발에 신겼을까. 지금은 천지사방에 흩어진 무엇이 되어 있을까.

http://eunso.egloos.com/104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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