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복잡미묘한 ‘말의 진설(陳設)’이다.
자신을 비꼬는 진헌에게 삼순은 “집에서 꽈배기 공장 해요?”라는 재치 만점의 대사를 날리다가도 이내 “사랑을 잃는 다는 건 어쩌면 자신감을 잃는 건지 모른다”고 독백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튀어나오는가 하면 ‘포샵질’ ‘미지왕’ ‘지랄’ 같은 속어도 무시로 등장한다.
거칠고 코믹하다 때로는 밀어로 시청자들을 홀리는 이 ‘말발’의 주인공은 작가 김도우다. 그의 전작이 형부와 처제의 금기의 사랑을 소재로 한 MBC 미니시리즈 ‘눈사람’(2003)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김삼순’은 낯설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다, 창작이 아닌 지수현의 소설 ‘내 이름은 김삼순’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어서다. 그러나 그는 원작의 설정 변화와 캐릭터에 대한 다른 차원의 이해로 ‘각색’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있다.
- 작품을 맡은 동기는.
“원래 갖고 태어난 게 마이너적 감성이어서 흥행드라마, 특히 로맨틱 코미디를 쓰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원작은 MBC 드라마국 김사현 부장으로부터 추천 받았는데, 처음엔 관심도 없던 로맨스 소설이어서 썩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편견을 버렸다. 전체적으로 따뜻했다. 너무 허황되지도 않고 귀엽고 동글동글한 삼순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드라마가 작가 따라 다르듯, 로맨스소설도 그렇구나 하고 느꼈다.”
- 벌써 숱한 명대사가 나왔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삼순이가 아프게 주절거리는 아날로그적 감성도 ‘엉뚱 발칙함’도 내 안의 것들이다. 전에는 진지하고 시적인 대사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귀에 쏙 박히는 쉬운 것들이 좋다. ‘지둘려 삼식아~’ ‘너무 오래 굶었어’ 같은.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 삼순이 언니 이영과 레스토랑 주방장 현무의 원나잇 스탠드를 암시하는 장면 등이 비판 받고 있는데.
“성적표현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인물들에게 지나치게 순결과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우리 드라마가 천편일률로 흐르는 이유 중 하나다. 변하는 세상을 따라 딱 반 발짝만 라인을 벗어나고 싶었다. 몸 없는 신기루 같은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영과 현무의 관계는 몸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다.
이영이 현무에게 수표를 건넨 것이야말로 진정한 패러디다. 삼순이의 ‘너무 오래 굶었어’와 함께 여성의 성적 욕망도 양지로 끌어내고 싶었다. 그 수위가 안방용을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삼순이가 "금순이에게 머리를 했다('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는 미용실 직원)"는 대사를 비롯해 곳곳에 다른 드라마의 패러디가 숨어있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는데 튀지 않고 상황과 맞아떨어지면 쓴다.
금순이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 하나만 의도했을 뿐 나머지는 아니다. 특히 같은 시간대 SBS 드라마 ‘돌아온 싱글’을 연상케 한 대사는 그 드라마를 알지도 못한 2월에 쓴 것이다. 알았더라면 쓴 것도 지웠을 것이다. 그건 상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김선아와 현빈의 연기는.
“김선아는 캐릭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절제도 잘 한다. 매회 애드리브를 하며 나까지 웃게 만들지만 (‘공항’신에서 눈물 짓다가 ‘땡큐’라고 말할 때 자지러졌단다) 중요한 감정 신은 정확하게 한다. 영리한 배우다. 현빈도 마찬가지다. 82년생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다.”
- '김삼순'이 정교하기는 하나 역시 여성들, 특히 30대 미혼 여성들의 판타지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인정한다. 드라마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설득력 있는 판타지로 사람들을 꾀어 담배를 팔려는 게 아니다. 피로회복 하라고 ‘봉봉오쇼콜라’(초콜릿의 일종)를 나누어 주고 있다. 5,000만원이라는 조건(삼순이와 진헌의 계약연애의 발단이 된)도 없이 무상으로.”
- 삼식이와 삼순이가 커플이 될 지가 관심이다.
“진헌(삼식이)에게 희진은 엄마같은 존재다. 연상인 삼순이 오히려 친구 같은 관계다. 진헌은 성장하고 있다. ‘사랑’으로 상징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한 여자를 택하면서 진정한 남자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충실하겠다고 했고 마지막까지 그럴 것이다.”
♡ 가슴 찡~한 사랑의 명대사♡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건 그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다. 사랑, 그렇게 뜨겁던 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믿어지지 않아서 운다. 사랑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운다. -태평양을 조각배 타고 건너는데 혼자면 너무 무섭잖아요. 혼자 노 젓는 것보다 둘이 젓는 게 더 빠르고.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에요. 그런 화학성분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는 미묘한 무언가가 있다고요. 난 그렇게 믿고 사랑을 했어요. 호르몬이 넘치든 메마르든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진심이요.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 힘도 없어요.
-커피 한 잔의 열량은 5㎉ 키스 5분의 열정과 같다. 우리가 3년 동안 나눈 키스의 열정은 얼마나 될까? 사랑은, 그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간 걸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주목 받는 생이고 싶거든요.
-서른이 되면 안 그럴 줄 알았어. 가슴 두근거릴 일도 없고 전화 기다리면서 밤새 울 일도 없고. (중략) 그렇게 겪고도 또 누굴 좋아하는 내가 끔찍해 죽겠어. 심장이 딱딱해 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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