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은 경계의 나이다. 민법상 성인이라지만 세상이 어른 대접해줄 리 없고, 청소년이라 하기에는 열없는, 참 난처한 나이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스무 살’은 그 아래들에게 있어 신천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고, 그 위쪽에서 돌이켜 보자면 고통조차 아릿한 아름다움으로 반추하게 되는 시절이다. 우리에게 ‘스무 살’은 이미 생물학적 연대의 한 시기가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며 작동하는 하나의 감성(感性) 기관이다.
서울대 졸업반 친구 사이인 김은혜(22ㆍ소비자학, 경영학) 김성민(23ㆍ서양화)씨가 각각 글과 그림을 나눠 맡아 만든 책 ‘스무 살의 동화’(문학세계사 발행)는 스무 살짜리들의 웃음과 눈물, 꿈과 불안을 일기처럼 동화처럼 담은 책이다.
01학번인 두 사람은 대학 별 관측 동아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그런 사이라고 한다. 겨울 밤 하늘 황소자리 곁에 뜨는 ‘플라데이아 성단’이 가장 좋다는 이들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교길 지하철에서 우리 또래들이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이 저 친구들을, 또 우리를 웃게 하고 슬프게 하는가, 우리는 서로 어떤 꿈을 꾸면서 행복해 하고 불안해 하는가’ 하는….” 그게 2년 전이다. 글은 김은혜씨가 썼다. “진주여고 시절 교지에 쓰려고 대 선배님인 박경리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고, 대학 와서는 우연한 기회에 수험생 수기를 낸 적이 있어요. 여러 명의 글을 모은 책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제게 저자 서문을 맡기더군요. 제 글이 봐줄 만 했나 봐요.”
그렇게 친구와 이웃과 가족들의 이야기, 꿈 이야기, 다단한 삶의 경험과 느낌과 사유의 글들이 모이는 동안, 김성민씨는 하나 하나를 그림으로 옮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순정만화에 매료돼 틈만 나면 읽고 그렸다는 김씨다. “막연히 그림이 좋아 고2때(인문계) 자퇴하고 이듬해 대입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을 왔죠. 카툰이 전공과 사뭇 다르고, 또 직업으로 선택할 마음은 아직 없지만, 뭐 어때요. 그려서 즐겁고 봐서 행복하면 되죠.”
책에는 ‘나난의 일기장’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나난’은 이들이 만든 토실하고 예쁜 캐릭터 이름. “동화처럼 아름다운 나의 삶을 꿈꾸는 난,…”에서 따 붙인 말이라고 한다.
“나난의 일기는 물론 우리 자신과 이웃들의 이야기지만,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그 친구들의 내면과 표정을 늘 염두에 두고 작업했어요. 모든 스무 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요.” 그렇게 스무 편의 일기를 찾아 만드는 작업은 어쩌면 이 땅 위에서 ‘플라데이아 성단’들을 관측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별을 볼 때는 가만히 한 곳만 바라보지 말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보일 때가 있어. 그때 살며시 별빛을 쫓아가봐.”(‘별을 찾는 눈’) 누구든 ‘나난’이 되고, 누구나 ‘성단’을 찾을 수도 될 수도 있는 동화 세상이 이제 막 세상 속으로 나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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