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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극단 루트21 '메데이아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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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극단 루트21 '메데이아 콤플렉스'

입력
2005.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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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버지(시저)의 미망인(클레오파트라)과 관계를 맺은 고대 로마의 군인 마쿠스 안토니우스에서 최근 영화 ‘4인용 식탁’에 이르기까지, 불륜은 가히 인류사적 테마.

위선적으로 사는 남자(박신양)에게서 강간당하고 생긴 쌍둥이를 유산시키고 마는 여인(전지현)의 한이 죽은 아이들의 영혼에 고스란히 전달돼 무책임한 남자에게 복수를 퍼붓는다는 영화까지 왔다.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는 저 인류학적 사건의 원형은 어떤 모습일까?

극단 루트21은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그리스 비극 ‘메데이아 콤플렉스’에서 기원을 찾는다. 2004 베세토 연극제에 참가, 객석으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 이 여름을 서늘하게 식힌다.

“내가 긴 밤을 수치심에 떨며 지새우는 동안 당신 대체 어디서 몸을 섞었나?” 이웃 나라 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조국을 배반하면서까지 그 남자와 결혼한다는 설정은 어찌 보면 낙랑공주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강한 여성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낙랑공주류의 여인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어렵사리 결혼한 남편 이아손이 알고 보니 황금 양털을 손에 넣으려는 속셈이었을 뿐더러 다른 나라 왕녀 글라우케에 빠져 결혼까지하고 만다..

그는 상황을 똑바로 인식하고,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남편을 위해 어떤 고생도 마다 않았건만, 아내를 버리고 젊은 각시의 침실로 걸어 들어가네”라며 한탄에 빠진 그녀는 다음 복수의 단계로 나아간다.

딴 여자에 눈이 먼 이아손이 메데이아에게 추방령을 내린 직후였다. 메데이아는 하루만 더 있게 해달라며 애원한 뒤, 자신을 찾아 온 글라우케를 죽인다.광기에 사로 잡혀 이아손과의 사이에 난 아이들까지 죽이고 나서야 이아손이 돌아 오지만 한 차례 복수의 광기가 훑고 간 다음이었다.

이 연극에서 주목되는 장치는 그리스 극 특유의 코러스.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거나 그 사람에게 동조하거나 비판, 조롱하는 등 극중에 적극 개입한다.

이 코러스가 지금 이 시대 관객들에게 어떤 효과로 다가올 지 주목된다. 처절히 버림 받은 메데이아에게 여인네들(코러스)가 슬피 읊조리는 대사를 보자.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여자에게 너무 하시십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아내를 배신하는 건 나빠요. 그깟 출세, 그깟 재산을 위해 아내를 눈물 짓게 하지 마세요.”

극을 한국으로 당겨 오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전통 탈놀이, 연주, 굿 등을 현대적으로 차용한 점이 돋보인다. 입에 잘 붙지 않는 대사를 전통적 4ㆍ4조로 고친 점도 우리 관객들을 더 흡인하는 요소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한국화의 좋은 예. “둥실둥실 아가님들 어디에서 오셨나.

넘실넘실 사랑이야 어미아비 이불속.”지난 해 와세다 대학에서의 야외 무대에서 제 11회 베세토연극제 참가작으로 상연됐던 이 무대는 때마침 뿌려대던 빗줄기에 불구, 마침내 “메데이아! 메데이아!”를 연호하던 관객들로 더욱 빛났던 바로 그 무대이기도 하다. 박재완 연출, 이승비 장재호, 곽병규 등 출연. 9~24일 게릴라극장. 화~금 오후 7시30분, 토 4시30분 7시30분, 일ㆍ공휴일 3시 6시.(02)763-1268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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