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정부를 우습게 보는 정도가 도를 넘었다. 정책당국자들의 큰 소리를 아예 믿지 않거나 냉소적으로 ‘잘 해보라’식이다. 정부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연일 극단적인 처방과 말을 쏟아내지만 이미 내성(耐性)이 생긴 시장은 한 귀로 가볍게 흘린다. 사안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정책의 적합성보다 감성적 대응으로 시장을 억압해온 댓가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최근 금리의 경기조절적 기능에 대한 논란과 함께 시중금리가 급등하자 “금리인상을 기대하는 시장참여자들은 큰 손해를 보게될 것”이라며 “한국은행 총재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반발을 무릅쓴 이 발언에 시장이 잠시 겁을 먹는 것 같더니 어제 지표금리인 국고채 수익율이 4개월만에 최고치(4.09%)로 치솟았다. 시장이 정책당국을 비웃으며 거꾸로 베팅한 것이다. 한 부총리는 얼마 전 고유가를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 “유가보다는 환율(원화절상)이 문제”라고 동문서답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원화절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난데없이 “지난 주 제일 좋았던 뉴스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자문한 뒤 “김병준 정책실장의 언론 인터뷰”라고 자답했다고 한다.
“헌법 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을 만들 것”이라는 김 실장의 발언을 지칭한 것이다. 엄청난 뜻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메시지는 “투기소득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를 국민적 합의로 만들겠다”는 한마디다. 말만 많았지 아무 일도 안했다는 자기고백에 다름아니다.
무릇 정책이란 간단명료하고 정확ㆍ엄정해야 시장참여자들이 따른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쉬운 것도 복잡하게 말해 시장을 혼란시킨다. ‘5%대 성장,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신앙처럼 받들다 슬그머니 후퇴한 것은 대표적 예다.
특히 행정복합도시나 서울 뉴타운 개발지역의 지주들이 공시지가 인상을 요구한다는 얘기를 듣다 보면 정부가 시장의 놀이개감으로 전락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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