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미 연방 대법관의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전면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11년 만에 찾아온 대법관 공석의 기회를 활용해 대법원의 보수 우위를 다지려는 공화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의 기싸움은 향후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의 파행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갑상선 암을 앓고 있는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고령의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중 은퇴할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양당은 대법원 재편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데 필사적이다. 시사주간 뉴스위크 최신판(11일자)은 미국 진보ㆍ보수 세력 사이에 ‘성전(聖戰)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격돌의 조짐은 3일 일요일 아침 TV 뉴스 쇼에서부터 불거졌다. 상원 법사위의 민주당 간사인 패트릭 리히 의원은 NBC방송에 출연, “극단적인 보수 인사가 지명된다면 미국을 단합시키지 못할 것이고 그것은 의회의 투쟁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에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통해서라도 인준을 막겠다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상원 법사위의 공화당 미치 매코넬 의원은 폭스TV와의 회견에서 민주당 의원 7명이 공화당 의원 7명과 필리버스터를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기로 한 ‘14인 합의’를 상기시키며 “이는 부시 대통령이 지명하는 어떤 합리적인 인사도 쉽게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반격했다.
인준 청문 전략에서도 양당은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민주당은 후보자에게 낙태와 동성결혼, 소수인종우대정책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한 견해를 물어 판결 성향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또 연방수사국(FBI)의 사전검증 자료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을 요구하는 것도 민주당 전략의 일부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은 법관에게 구체적 사안에 대한 견해를 요구하는 것은 사전 판결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후보자의 철학적 견해는 14인이 합의한 ‘아주 예외적인 상황’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민주당이 후보자의 판결 성향을 문제 삼아 필리버스터를 시도할 경우 아예 필리버스터 요건을 제한하도록 의사 규칙을 고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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