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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전합격 무전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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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전합격 무전탈락

입력
2005.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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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세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2001년 연세대는 ‘기여우대제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학교발전에 도움을 주거나, 기부금 또는 토지ㆍ건물을 제공한 자의 자녀에게 특례입학의 혜택을 준다”는 것. 입학자격을 ‘20억원 이상 기부금을 낸 사람의 자녀’로 정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매년 80명을 기여입학제로 받아들일 예정이었으니 이 제도가 시행됐으면 어중간 한 사립대 1년 예산보다 많은 1,600억원이 굴러들어 올뻔했다. 이런 야심찬 계획은 그러나 며칠 만에 여론의 집중포화에 흐지부지됐다.

△잠잠하다 싶던 기여입학제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4년제 대학 총장들이 대교협 정기총회에서 기여입학제 제한적 허용을 정부에 건의했다. 역시 이유는 재정난이다. 재정의 7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어려운 여건은 여전하다. 저출산 영향까지 겹쳐 학생수는 줄고 있다.

지방대 가운데는 절반도 못 채운 학과가 수두룩하다. 기여금 용도 제한, 자격 강화 등 자진해서 제한조건을 단 것을 보면 절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는 재정타개 차원에서만 다뤄도 좋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이런 장면을 한 번 상상해보자. “대학입시에서 큰아들이 낙방해 집안 분위기가 침울한 1월의 어느날. 퇴근 후 아내가 큰아들을 붙잡고 통곡을 하고 있다. 얘기인즉 이웃에 사는 친구가 아들이 떨어진 대학에 기여입학으로 합격했다는 것.

워낙 잘 사는 티를 내 눈꼴이 시었지만 평소 아들보다 성적이 떨어져 코방귀를 뀌었던 터였다. 아들이 대학 못간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 순간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이 허망한 얘기의 주인공이 당신이라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 31조를 떠올리면 기여입학제는 헌법에도 저촉된다는 견해가 많다. 여기서 능력이란 부모의 능력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계층간 불화, 양극화 심화, 가치관 혼란, 대학불신 풍토 조장 등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아 보인다.

대학이 신분상승의 유력한 통로로 작용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기여입학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가난도 서러운데 유전합격 무전탈락(有錢合格 無錢脫落)이라는 말까지 나와서야 되겠는가. 사학 지원책은 다른 각도에서 모색돼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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