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포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고위층의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최근 국적 포기자들의 면면을 추적, 방송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MBC ‘PD수첩’이 해외 여행과 유학이 자유화한 1981년부터 국적법이 발의된 지난해 11월까지, 국적 포기자 4,500여명의 가족 관계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제작진은 이 같은 분석 결과를 5일 밤 11시5분에 방송하는 ‘국적 포기 25년, 병역 기피의 역사’(연출 유해진 김재영)에서 공개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4,500여명의 부모 및 조부모의 직업을 확인한 결과, 고위층이 1,200여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전 국회의장 이만섭씨, 전 내무부장관 오치성, 전 경제부총리 최각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형 전기환, 전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성룡씨 등 전현직 고위 공직자 42명을 비롯해 국ㆍ공립대 교수 255명, 국책 연구원 63명, 외교관 3명 등 전현직 공무원이 363명이나 됐다.
특히 4성 장군 출신 2명 등 장군 출신이 11명에 달해 충격을 더한다. 전현직 언론계 인사도 18명 포함됐다. 또 국적 포기자 부모의 학력 분석 결과, 대부분이 명문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이 파악된 1,222명 중 서울대 출신이 560명으로 무려 45.8%를 차지했고, 연세대 145명(11.8%), 고려대 84명(6.8%) 등이었다.
국적 포기가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본격 악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6월부터. 98년은 81년 해외 여행과 유학 자유화 조치로 해외에서 출생한 남아가 만 17세가 되는 해로, 국적법에 18세 이상 남성의 경우 병역을 마친 경우에만 국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81년 이후 매년 1,2명에 그쳤던 17세 남성의 국적 포기자 수는 98년 88명을 시작으로 해, 99년 120명, 2003년 417명 등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제작진은 병역 기피 목적의 국적 포기에 대한 들끓는 비난을 애써 외면하는 참여 정부의 인사 방침에도 칼을 들이댄다.
최승호 책임PD는 “최근 청와대에서 공직 인사 검증 기준을 새로 정비했으나 국적 문제는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포기의 확산을 막으려면 먼저 정부가 분명한 원칙을 세워 적어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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