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부부인 김모(34) 이모(32ㆍ여)씨는 공무원 사회에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휴에 아들(2)과 속리산으로의 2박3일간의 오붓한 가족여행을 떠났다. 이씨는 “그간 주말이나 휴일이면 늘 시댁과 친정을 오가느라 집안일 할 시간조차 빠듯했는데 이제 매주가 연휴여서 가족여행을 하거나 수영을 배우는 등 여유 있게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주5일제가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으로 확대 시행된 이후 첫 연휴인 2일과 3일 시내 극장가와 쇼핑센터, 놀이공원 등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쏟아져 나온 시민들로 분주했다. 자기계발을 위해 주말을 이용, 학원과 백화점 문화강좌를 듣는 시민들도 부쩍 늘어났다.
여가 즐기기
극장 놀이공원 쇼핑가 학원 붐벼 서울 광진구 C극장은 주말 심야영화 상영 때 빈 좌석이 70~80석에 달했으나 이번 주말에는 빈자리 없이 만원이었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에는 가족단위의 이용객들로 붐볐으며, 시내 주요 백화점과 쇼핑센터 등에도 가족 쇼핑객이 크게 늘었다. 서울 노원구의 E할인점 관계자는 “토요일 오전 손님이 예전에 비해 70% 이상 늘어났다”며 “대부분 쉬는 날을 맞은 직장인들이었다”고 말했다.
장맛비로 도심을 빠져 나가는 여행객수는 적었으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인천국제공항은 금요일인 1일 하루 동안 평소보다 1만명 가까이 많은 7만4,000여명의 이용객들이 몰려 들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괌 일본 중국 등으로 가는 3일 짜리 주말 단기여행 상품에 대한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며 “이미 7~8월 여행상품은 대부분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학원가는 첫 주말부터 밀려드는 수강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일부 학원은 아예 주말용 긴급 프로그램을 편성했으며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의 경우 직장인 수강생들이 집중적으로 늘었다. 또 구청 동사무소 백화점 등의 문화강좌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이밖에 인터넷 쇼핑몰 사업과 소자본 창업 등 직장인에게 가능한 ‘투잡스’ 창업 아이템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관공서는 한산
관공서는 한산 관공서들은 찾아오는 민원인이 거의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서울 도봉구청은 민원봉사과와 지적과 등 주민들이 주로 찾는 부서에 3명씩, 나머지 부서에는 1명씩 근무자가 출근했으나 방문한 민원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청 관계자는 “출생과 사망 신고 등 급한 민원은 당직자가 직접 접수하고 그 외 업무는 접수 후 월요일로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군인들도 대부분 체력훈련이나 스포츠 등을 하며 연휴를 보냈다.
주 5일제의 그늘
주 5일제의 그늘도 반면 주5일제의 혜택이 닿지 않는 계층에게는 주말 연휴가 오히려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은 주말 수당이 없어졌으며 백화점 할인매장 호텔 등 서비스업종의 종사자들에게는 늘어난 고객 때문에 야간 연장근무까지 해야 했다.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음식점들은 주5일제로 타격이 컸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57ㆍ여)씨는 “공무원과 회사원들이 한꺼번에 빠져 주말 매출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 盧대통령 "관저 휴식" 국회 "지역구 챙기기 더 바빠"
청와대와 정당, 국회에서도 관공서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2일 첫 토요휴무를 가졌지만 ‘빈부(貧富)격차’가 매우 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청와대 관저에서 휴식을 취했다. 노 대통령은 ‘쉴 때 쉬는’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토요일의 공식 행사는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다. 청와대는 춘추관과 국정상황실,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일부 특수 부서를 제외하곤 주5일제를 확실히 지키기로 했다. 이해찬 총리도 이날 1박2일 일정으로 제주 가족여행을 떠났다.
국회엔 신(新) 주말정치 바람이 분다. 지역구 의원들은 “토요일마다 들로 산으로 유권자들을 따라 다녀야 할 판”이라며 주5일제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주말을 이용해 독거 노인 등 지역의 소외 계층에 대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토요일 오전 북한산에 올라 주민들과 많은 대화를 하기로 했다”고,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은 “주말을 이용해 복지 관련 전문대학원에 다니며 의정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물론 대다수의 의원 보좌진과 정당 사무처 직원들에겐 주5일제는 아직 남의 얘기다. 한나라당 임태희 수석원내부대표는 이날 의원회관에 들렀다 출근한 보좌진의 등을 떼밀어 돌려 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보좌진들이 의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의원실은 격주로 주5일제를 지키거나, 금요일ㆍ토요일과 토요일ㆍ일요일로 나눠 쉬기로 했다. 정당 사무처도 되도록 주5일제를 지키려 하지만, 대변인실이나 대표 비서실 등 일부 부서에선 “신문도 TV 뉴스 없는 세상이 와야 가능한 얘기”라는 분위기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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