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가에 있는 스켄더베 광장. 15세기 오스만투르크에 맞서 싸운 전쟁영웅의 이름을 딴 이곳을 수만명의 인파와 형형색색의 깃발이 뒤덮었다. 3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수도 한복판에서 열린 각 당의 마지막 유세였다. 1998년 신헌법이 제정된 이래 가장 치열한 선거라는 말에 걸맞게 광장과 인근 콜프스 거리는 교통이 완전 통제된 채 지지자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선거 열기를 높인 것은 알바니아의 고질적인 빈곤이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미리엄 네지리(25ㆍ여)씨는 "참을 만큼 참았다"며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표를 앞두고 마지막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집권당인 사회당은 34%, 제1야당인 민주당은 35%의 지지도를 얻었다. 그만큼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야당은 "지난 8년간의 실정을 심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민심을 설득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야가 빈곤 탈출의 방법으로 친미노선의 채택, 그리고 유럽연합(EU)으로의 통합을 공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당은 안보와 경제를 한꺼번에 얻게 해 주겠다며 EU 가입을 위한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유럽은 알바니아의 미래라는 식이다.
그러나 각 당 본부와 지역 사무소에는 거의 예외 없이 EU 깃발이 아닌 미국 성조기를 그린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미국을 꿈의 나라로 선망하는 국민에게 자신들을 미국에 연결시키려는 이미지 전략이다.
광장에서 만난 아르디 풀라즈(24)라는 알바니아 TV 기자는 “지켜지지 않을 허황된 공약만이 난무하고 있다”며 “선거를 취재하는 나는 투표장에 갈 마음은 솔직히 없다”고 말했다. EU 가입이라는 허울좋은 명분보다 젊은층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절박하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수십 개의 정당이 난립하는 바람에 후보자의 소속 정당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유권자들이 허다하다. 140명(지역구 100명, 비례대표제 40명)의 선량을 뽑는 선거에 간판을 내건 정당은 모두 22개. 이중 사회당, 민주당을 비롯해 사회통합운동당, 민족개발운동당 등 4개 정도가 주요 정당으로 실질적인 지지도를 갖고 있을 뿐 나머지는 이름 조차도 낯선 게 태반이다.
풀라즈 기자는 거리의 벽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한 각 당 후보들의 사진을 가르키며 "선거 때만 되면 독버섯처럼 등장하는 정당들의 행태가 젊은 층의 정치 무관심을 부르는 요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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