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올라가면 교회랑 약국만 보인다는 말에 한 가지를 더해야 된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모텔만 보인다는 말이다. 중소도시 가운데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교회나 약국보다 모텔이 더 많이 보이는 곳도 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신림동, 신촌, 수유리 등 모텔촌으로 유명한 데가 여러 곳 있다. 일산에서는 초등학교 코앞까지 모텔이 세워져 분노한 엄마들이 들고 일어나 공사를 중단시킨 적이 있다. 기흥, 천안, 수원 등 일부 도시는 고속도로변에 모텔촌이 집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원지도 마찬가지다. 장흥 같은 좋은 유원지가 떼 지어 들어선 러브호텔로 다 망가져버렸다.
자동차 여행객이 늘면서 순수 숙박객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러브호텔의 성격이 더 크다. 이 때문에 모텔의 증가현상은 사회 전체로 보면 이혼 증가, 집 밖에 애인 만들기, 혼전 성 개방, 원조교제, 신종 매춘 등 성과 관련된 부정적 현상에 대응된다.
모텔은 경제적으로도 독자적 목소리를 낼 정도로 커졌다. 모텔 장사가 잘 되고 안 되는 데 따라 나라 경제가 죽네 사네 하는 판이다. 모텔은 대부분 은행 빚을 얻어서 짓는데 모텔이 줄줄이 망하니 은행도 대출금을 회수 못해 덩달아 어려워진다는 논리이다. 이것이 결국 나라 경제 전체를 죽이게 생겼으니 모텔업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분명 우리나라는 숙박업과 요식업 비중이 나라 경제를 죽이고 살리고 할 만큼 높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러브호텔을 살려야 나라 경제가 살아날 지경에 이르렀다.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닌데 우리 사회의 내실이란 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지 씁쓸하기만 하다.
건축적으로 보았을 때 모텔이 문제 되는 것은 국적 불명의 해괴한 모습으로 주변의 조형 환경을 어지럽히고 나아가 우리의 가치관을 왜곡시키는 데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텔 디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여관의 모습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표준형 건물이다. 이런 유형은 단조롭고 멋이 없을 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덜 문제가 된다.
두 번째는 디즈니랜드로 대표되는 놀이동산 모티프로 지어진 경우이다. 서양의 고성, 궁전, 신전, 심지어 성당 같은 모습으로까지 지어진다. 세 번째는 팝 아트식의 현대 장식주의나 대중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경우이다. 흑백의 인조 대리석을 이용한 얼룩말 무늬, 얼룩덜룩한 색의 현란한 장식, 금속재료를 이용한 첨단 이미지, 네온사인을 이용한 야간 유흥업소의 분위기, 미국 도박도시들의 호텔 모습, 미국 패스트푸드점의 실내장식 등등 다양하기도 하다. 밤이 되면 더 심해진다. 온갖 색의 강렬하고 자극적인 조명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여행객을 위한 모텔, 즉 정상적인 숙박업소로 보면 된다. 이름도 다복, 진흥, 성실 등 진부할 수는 있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지방에 있는 경우에는 그 지방 이름을 그대로 모텔 이름으로 쓴다. 어린 딸내미 데리고 가족이 나들이라도 할 때 걱정 안 하고 묵을 수 있는 곳이다.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이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차치하고라도 순수한 건축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문제가 많다.
두 번째 경우의 문제는 외국의 고전 문화재에 대해 심한 실례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실례는 부메랑이 되어서 우리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문화재(아무리 그것이 서양 것이라 해도)를 부정확하게 왜곡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갖게 되며 이것은 문화재 전반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로 확장될 수 있다. 모텔에 나타난 이런 디자인 경향은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문화재에 장난을 쳐도 된다는 미국식 대중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이 모텔까지 흘러 들어온 것은 놀이동산을 매개로 해서이다.
롯데월드, 에버랜드, 서울대공원 등은 모두 서양의 고전 건축물들을 흉내 낸 미니어처들로 지어져 있다. 모텔은 다시 이것을 흉내 낸 것이다. 이름들도 비슷하다. 나폴리, 베네치아, 로마 등 유럽, 특히 이탈리아 도시들 이름이 많다. 이것이 아닐 경우에도 발렌타인, 센세이션, 러브홀릭 등 자극적인 외국 이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요약해보자. ‘서양의 고전 문화재를 모방한 디즈니랜드를 모방한 놀이동산을 모방한 나폴리 러브호텔’이 된다. 한 번에 얘기하기 힘들 정도이다. 코미디의 소재 같다.
최초의 출처는 물론 디즈니랜드이다. 한 번 세어보자. ‘원본 문화재-디즈니랜드-놀이동산-모텔’로 이어지는 여러 겹의 이해하기 힘든 흉내내기의 연결고리가 있다. 원본인 서양 고전 문화재를 세 다리나 건너며 흉내 낸 것이다. 원본에 대한 세 겹의 왜곡인 셈이다. 번역으로 치면 중역(重譯)을 세 번이나 한 것에 해당된다. 지금 우리의 영한사전 수준이 문제되는 것은 일본사전을 중역했기 때문이다. 한 번만 중역을 해도 이 지경인데 세 번이나 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어진다.
고전 문화재를 패러디하는 작업은 팝 아트가 시초이다. 여기까지는 예술이니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전의 엄숙성을 친숙함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이런 작업은 예술의 의 의무 가운데 하나이기이도 하다. 다음 단계부터는 조금 복잡해진다. 이것을 상업공간에 돈벌이를 위해 차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고장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다. 자본의 농간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항상 따라다닌다.
설사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패러디를 가하는 구체적 처리에 신중을 기한다. 고전 문화재가 지나치게 경박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자칫 일반 대중들이 고전 문화재를 우습게 여겨 함부로 대해서 훼손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는 이처럼 여러 겹의 견제장치 속에 들어있는 복합현상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놀이동산에 수입되면서 견제장치는 사라졌다. 루브르와 노트르담은 미키마우스와 같아졌다. 이것이 다시 모텔로 흘러들면서 3만 원짜리 일회용 섹스와 같아졌다. 이런 짓은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에서 보았을 때 할 짓이 못 된다.
세 번째 경우의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미국 유흥문화의 조형 언어를 모방함으로써 미국식 저질 소비 자본주의에의 종속을 부채질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나라에서 러브호텔을 살려서 장려해야만 경제가 살아난다는 포주의 공갈 같은 소리가 경제단체장의 입에서 나오는 현상이 좋은 증거이다. 일부 모텔이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점의 실내장식을 흉내 낸 것도 또 다른 증거이다.
손님을 끌기 위해 현란하게 외관을 꾸미지만 정작 관심은 조형성이 아닌 불륜 커플들을 위한 서비스에 집중된다. 주차장 입구에 커튼을 쳐놓아서 자동차 번호판을 가리는 서비스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실내 설계에는 더 기상천외한 서비스가 궁리된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는 한 사람이 타서 버튼을 일단 누르면 중간에 다른 사람이 눌러도 서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만들어진다. 중간에 다른 불륜 커플을 마주치지 않게 해주기 위한 배려이다.
모텔은 사람살이에서 중요한 기능일 수 있다. 특히 21세기가 문화와 관광의 시대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문화재 답사 열기는 경제, 문화, 사회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며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숙박업은 여기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유명한 고도에는 반드시 유명한 호텔이 도시의 명성과 함께 한다. 한 도시가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래 남는 데에 그런 호텔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아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으로 추천된다. 전 세계에 소개되는 관광책자에 반드시 들어간다. 우리는 이런 것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디즈니랜드를 모방한 에버랜드를 모방한 나폴리 러브호텔’을 내놓을 것인가.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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