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결국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슈뢰더 총리는 1일 연방하원에서 실시된 신임투표에서 의도적으로 불신임을 당했다. 조기총선을 실시해 한꺼번에 판을 바꾸겠다는 의도다. 그는 투표를 앞두고 사민당 의원들에게 기권을 요청했다.
슈뢰더는 개혁실패에 따른 권위실추와 인기하락을 단번에 만회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승부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더욱이 슈뢰더의 정치행위에 대해선 위헌논란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 1940년 나치가 1당 독재를 확립한 이후 독일 헌정에서 임기 중 의회를 해산하는 행위는 금기시돼 왔다. 과거의 전례를 보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1982년 12월 불신임 당한 후 83년 3월의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헌법재판소는 당시 위헌소송에서 “선거자체는 합헌이지만 의도적으로 불신임을 당한 행위는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여론의 눈총이 따갑다. 국가원수인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슈뢰더는 아무 소득도 없이 총리직과 집권당 당수직에서 물러나는 치욕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쾰러 대통령은 야당인 기민련이 내세운 인물이다.
이번 신임투표는 5월 집권 사민당이 39년 만에 텃밭인 노르트라인_베스트팔렌 주의회선거에서 참패한 뒤 슈뢰더 총리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독일 인구의 20%인 1,800만 명이 거주하고, 뒤셀도르프 등 루르 공업지대의 주요 도시가 위치한 이 지역은 정권의 향방을 가늠하는 풍향계였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는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최악이라는 500만 명의 실업자와 1%에 못 미치는 저조한 경제성장률 때문에 패배했고, 이 때부터 이미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심지어 레임덕도 아닌 ‘데드덕(Dead Duck)이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또 최근 지지율 추이로도 야당인 기민련에 크게 뒤지고 있어 조기 총선이 실시되더라도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는 사민당 27% 기민당 46%로 여야의 지지율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 당수는 “사민당-녹색당 연정을 더 지속시키지 않겠다”며 정권탈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보수 우파인 기민련이 집권할 경우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줄이고, 유럽통합에 소극적이며, 성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예상된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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