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4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한 클럽에서 열린 ‘헤드윅’ 쇼케이스의 관객들은 작은 이변에 놀랐다. 오만석(30)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승우를 제치고 가장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일이지만 사실 그는 한 인터넷사이트의 카페에서만 3,000여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공연계의 스타다.
지난달 26일 막을 내린 ‘헤드윅’에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트랜스젠더역을 맡아 좌석점유율 100%를 이끌어냈던 오만석이 9~31일 ‘암살자들’에 출연한다.
‘암살자들’은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평가 받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 실제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거나 암살을 시도했던 남녀 9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만석은 1974년 닉슨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던 사무엘 비크 역을 맡았다.
“이번 공연은 손드하임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는 데 일단 의미가 있어요. 뮤지컬인데도 연극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은 작품입니다. 비크 역은 노래보다는 긴 대사로 풀어가니 좀 수월할 듯 해요. 연극이다 생각하고 배역을 자청했습니다.”
그는 “연습 시간이 부족해서 걱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헤드윅’ 무대에 오르며 ‘암살자들’ 연습에 몰두해야 했고, 또 그 와중에 6ㆍ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가극 ‘금강’으로 평양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는 말대로 그는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지난해 연극 ‘갈매기’ ‘보이체크’에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에 연달아 출연한데 이어 올해도 ‘헤드윅’ ‘금강’ 등에 겹치기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며 강행군을 계속했다. ‘암살자들’의 막이 내리면 일본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지는 ‘겨울나그네’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6개월 뒤 일까지 정해져 있어 좀 답답해요. 배우는 마냥 쉬면서 재충전도 해야 하는데요”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로 진로를 잡았다”는 오만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99년 ‘파우스트’로 정식 데뷔했다. 2001년 ‘이(爾)’에서 연산군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광대 공길 역을 연기해 한국연극협회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강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담겨 있는 연기로 거침없이 배우의 길을 걸어온 듯 보이지만 그에게도 방황의 시간은 있었다. “연극원에 입학하고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군대 제대 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단 10년만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아직 다른 길 찾을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제가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와 함께 작업한 연출가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만석은 지진아”라고 말한다. 역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속도가 남들보다 매번 뒤 처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가 ‘학습능력’이 좀 떨어져요. 남들 쫓아가려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그는 ‘암살자들’이 “미국역사 속에 묻힌 사람들 이야기라 좀 낯설겠지만, 인간심리를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말한다. “음악도 기존 뮤지컬과 달리 극적이며 마치 말과 같아요. 내용과 음악이 독특한, 관객들이 매우 흥미로워 하거나 매우 지루해. 할 뮤지컬입니다.” 공연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02)556-8556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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