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누락시킨 채로 우주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 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시간과 공간만큼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과학적 개념은 흔치 않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아직도 시간과 공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과연 물리적 실체인가? 시간은 왜 미래로만 흐르는가? 공간은 왜 3차원처럼 보이는가? 우주는 시간과 공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뉴턴, 아인슈타인 등 과학자들은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했다.
그 동안 시간과 공간에 대해 과학자들이 내놓은 해답을 비전문가들이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물리학 도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제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고 내용이 난삽해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책 ‘우주의 구조’(원제 ‘the Fabric of the Cosmos’)는 맛있고 보기 좋은 요리처럼 독서 욕구를 북돋운다. 지은이는 미국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그린. 초끈 이론의 선두주자로 1999년 초끈이론을 소개한 ‘엘리건트 유니버스’를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뛰어난 이론 물리학자로 세계적 과학저술가의 명성까지 거머쥔 인물이다.
이 책의 목적은 지난 300년간 과학자들이 시간과 공간의 진정한 모습과 그 결과 나타난 우주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발자취를 되돌아보는데 있다. 16장으로 구성됐으며 750쪽의 두툼한 책이지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린은 ‘엘리건트 유니버스’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특유의 위트와 깊은 통찰을 이 책에서 십분 발휘하고 있으니까.
그린은 뉴턴의 물통 실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2장). 뉴턴의 고전물리학에서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정립되어 200여년 동안 물리학 최고의 교리로 군림한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100년 전인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편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되는 이른바 시공간 개념을 제안한다(3장). 1930년대부터는 모든 물리적 상태가 확률적으로 결정된다는 양자역학이 출현해 뉴턴의 고전적 세계관에 일격을 가한다(4장).
그러나 상대성 이론도, 영자역학도 시간이 갖는 기본적인 특성만은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다. 시간은 과연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열역학과 엔트로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5∼7장). 시간이 오직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이른바 시간의 비대칭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우주론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론은 우주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실제의 우주에 적용하여 빅뱅 이론이라는 거대한 가설을 만들어낸다(8장). 1970년대에 빅뱅 이론은 최첨단의 우주론으로 인정 받게 된다.
그러나 빅뱅 이론으로 시간의 비대칭성이 설명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 빅뱅 이론을 일부 수정한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등장한다(9∼10장).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일반상대성 이론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거대 물체에는 들어맞지만 빅뱅 직후의 작은 우주를 다룰 때는 양자역학의 도입이 불가피했다. 서로 배타적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의 이론체계로 통합하는 것이 통일장 이론이다. 최첨단의 통일장 이론은 초끈 이론이다. 초끈 이론을 발전시킨 M-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는 10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결합된 11차원의 시공간이어야 한다(12∼13장).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여분의 차원(6∼7차원)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린은 여분의 차원이 반드시 존재할 것으로 믿고 있으며 ‘앞으로 누군가가 여분의 차원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과학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575쪽).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을까? 그린은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수천 년간 인간을 속박해왔던 시공간의 족쇄를 걷어내고 ‘스타트렉’에서처럼 순간이동을 하거나,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될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15장).
그린은 첨단물리학의 난해한 개념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적절한 비유를 동원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가령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X파일’의 주인공인 멀더와 스컬리를 끌어들이거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로 엔트로피의 개념을 풀어가고 있다. 이 책은 올해 유엔이 정한 ‘세계 물리의 해’를 맞아 우주에 관한 읽을 거리를 찾는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흥미 위주의 에세이가 아니면 베스트셀러가 되기 어려운 교양과학도서 시장에 이처럼 묵직한 책을 끈질기게 내놓는 출판사와 옮긴이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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