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국왕의 혼인을 비롯해 세자 책봉, 왕실 혼례와 장례, 궁궐 건축과 같은 중요 행사를 ‘의궤(儀軌)’라는 이름을 붙여 모두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거기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동원한 사람과 그들의 신상, 의식이나 행사에 사용한 물품의 크기와 재료, 색깔까지 자세히 남아 있다. 궁궐이나 성곽 건축 기록에는 건물의 위치와 구조, 사용된 재료와 구입처, 인부들의 명단, 품삯도 보인다. 의궤만 있으면 조선의 행사를 지금도 거의 완벽하게 재연할 수 있을 정도니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가는 기록물이라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두 사람이 이 가운데 조선의 왕실문화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12가지 의궤를 골라 돌베개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테마한국문화사 제5권 ‘의궤’에 담아냈다. 왕실의 태(胎)를 봉안한 기록인 ‘태실의궤’, 국왕 장례 기록인 ‘국장도감의궤’, 왕실의 제사 기록인 ‘종묘의궤’, 정조의 화성행차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 궁중 잔치를 기록한 ‘궁중잔치의궤’ 등의 내용을 그림 자료 등을 곁들여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왕비를 정하고 육례(六禮)에 따라 화려한 혼인행사를 치르는 과정을 담은 ‘가례도감의궤’ 대목을 펼치면 사극에서 흔히 보는 왕비 간택이 실제 어떤 절차와 준비를 거쳐 거행되었는지를 소상하게 알 수 있다. 그림으로 화려하고 멋스럽기는 정조의 화성행사 장면만한 것도 없다. 왕권 강화와 개혁을 함께 도모했던 정조의 화성행차는 8폭 병풍, 두루마기 그림 등으로 다양하게 남아 있는데 책에 등장하는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김홍도의 지휘로 일류 화원들이 대거 참여해서 제작한 절정기 진경(眞景)문화의 정수이다. 저자들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성대하고도 장엄한’ 이 행사가 정조가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고 개혁정치의 구상을 널리 알리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책 끝에 프랑스가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협상 과정도 설명했다.
권오영 한신대 교수가 집필해 시리즈 4권으로 나온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계의 기념비적인 사건 중 하나인 무령왕릉 발굴 과정과 금동신발 환두대도 귀고리 허리띠를 비롯해 수입된 중국 자기 등 출토 유물, 무령왕릉 시기의 백제문화와 동아시아 정세 등을 여러 사진 자료를 곁들여 알기 쉽게 설명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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