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시간표/ 오카다 준 글. 박종진 옮김. 윤정주 그림. 보림.
방과 후 비밀수업/ 오카다 준 글, 그림. 김지효 옮김. 베텔스만.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여름을 지내다보니 서늘한 흙집이 그립다. 양옥이나 아파트보다 기와집이 더 많던 시절, 대청마루에서 저녁을 먹고 땀 흘려 끈끈한 몸을 수돗가에서 씻은 다음 모기장 안에 들어가 형제들이 나란히 누우면 잠들 때까지 할 일이라고는 이야기밖에 없었다. 전등마저 끄고 희미한 달빛만 들어오는 방안에서 듣는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어쩌다 사촌들이 놀러오면 여름밤의 이야기 향연은 활기를 더했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지어낸 것일수록 더 흥미진진했으니 그 시절 우리는 누구나 아라비안나이트의 셰헤라자데였다.
판타지라고 하면 흔히 상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장엄한 서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오카다 준의 따뜻한 판타지는 긴긴 여름 오후 심심하거나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문득 주위의 모든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거나 ‘내게 마법이 있다면’ 하는 사소한 가정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그가 펼치는 세계로 들어가려면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기한 시간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열 개의 에피소드를 시간별로 구성했다. 아침마다 가방 메고 재잘대며 등교하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 뒤편에서 우당탕거리며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점심시간이면 급식 메뉴에 따라 쟁탈전이 벌어지는 학교의 일상을 그린 이 책은 독특하다. 그것은 마법, 마녀, 정지된 시간, 말하는 고양이와 같은 신기한 존재와 상황을 등장시키지만 아이들의 생활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말도 못 하고 화장실 외에는 교실 밖에도 못 나가는 소심한 아이가 말하는 고양이의 도움으로 알록달록한 복도의 타일을 하나씩 밟아 양호실까지 가고, 말썽쟁이 학생처럼 청소함에 들어간 선생님은 닫힌 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그 애의 생각을 이해하려 애쓴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방과 후 비밀수업’은 학교에 사는 쥐가 미술교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나무 책상이 있는 교실, 숙직실, 운동장의 플라타너스, 음악실, 줄인형들의 밀회가 이루어지는 미술실 등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학교 곳곳의 공간을 조명한다. 공부가 재미없어 책상의 낙서를 보고 보물섬으로 모험을 떠나는 아이, 홀로 외롭게 지내는 야간 경비실 아저씨에게 봄을 전해주는 유채꽃 소녀 이야기 등은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공간과 풍경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만든다.
‘신기한 시간표’ 여섯 째 시간에 나오는 할머니 말처럼 학교와 학원으로 돌아치는 빡빡한 일상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하거나 공상하는 힘을 도둑맞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여름방학 공부계획을 미리 짜는 엄마들이여, 아이들 머리에 지식을 넣는 데만 애쓰지 말고 그들 마음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불러내 보자.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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