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금융허브 도약의 든든한 디딤판이 될까, 아니면 나라 곳간만 축 내는 애물단지가 될까.
말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던 한국투자공사(KIC)가 기대와 우려 속에 1일 공식 출범한다. 이강원 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이 초대 사장에 임명돼 일단 간판은 올렸지만, 인력 전산구축 자산운용기준 등 숱한 실무절차가 남아있어 본격 가동은 내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KIC의 종자돈은 외환보유액에서 나온 200억 달러다. 이 중 170억 달러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으로 확보한 외환보유액이고, 나머지 30억 달러는 정부가 국채발행으로 조성한 외국환평형기금의 일부다.
KIC는 이 200억 달러를 알토란같이 굴림으로써 한편으론 외환보유액의 수익성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론 외국금융기관의 국내 유치를 통해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KIC가 이런 설립 의도대로 굴러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어차피 장기프로젝트인 만큼 시간과 인내를 갖고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상당히 힘든 길이 예상된다. 만약 KIC가 실패한다면 단순한 투자손실이 아닌, 소중한 국가비상금(외환보유액)의 탕진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이 빚어질 수도 있다.
KIC의 첫 난관은 수익창출 능력이다. 만약 KIC의 운용수익률이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에 못 미친다면, ‘그냥 한은이 굴리면 될 것을 뭣하러 만들었나’라는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은 국제투자은행(IB)들의 기준수익률인 국제채권지수 평균수익률(7.7%)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라며 “한은이 우량채권에만 투자하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 투자수익률은 오히려 IB들을 능가한다”고 말했다. 주식이나 파생상품 같은 위험자산투자가 규제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햇병아리 조직인 KIC가 국제금융시장의 ‘큰 손’인 한은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정부는 KIC의 설립목적이 고수익 실현이 아닌 외국금융기관 유치를 통한 금융허브 기반구축에 있다는 입장이다. KIC 자산을 붙잡기 위해 세계 유수의 자산운용사들이 몰려올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금융중심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가운데 10~20개 정도를 유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한 관계자는 “톱 클래스의 자산운용사를 국내로 불러들이려면 최소 40억 달러는 맡겨야 한다”며 “KIC 자금의 80%(160억 달러)를 재위탁할 경우 유치 가능한 자산운용사는 4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지역본부 아닌 운용데스크 수준일 것이며, 따라서 KIC를 통해 허브그림을 그리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결국 외국 자산운용사를 유치하려면 연·기금 등에서도 돈을 맡겨 KIC를 ‘큰 손’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연·기금 등 외부자산을 끌어들이려면 KIC 스스로 운용성과를 통해 시장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KIC가 벤치마킹한 자산운용규모 1,000억 달러대의 싱가포르투자청(GIC)처럼 되려면 오랜 시간과 난관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KIC의 독립성도 관건이다. 정부는 불간섭 원칙을 여러 차례 천명했지만, 가시적 성적표에 조바심을 낼 경우 KIC 운용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끼어 드는 순간, ‘KIC 프로젝트’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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