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서울 김포공항 내 한국공항공사 사무실. 32년간의 공항 근무를 마치고 이날 정년 퇴직하는 안전관리팀장 김요섭(56)씨. 24세 때부터 일해온 김포공항과 작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내 조국의 얼굴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접하면서 가장 마지막으로 보고 가는 곳이므로 업무에 한치의 오차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일해왔습니다.”
두살 때인 1951년 아버지를 여의고 고향인 전남 무안에서 할머니 밑에서 혼자 자랐다. 아버지는 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강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했고, 이후 어머니와도 연락이 끊겼다. 식당일을 전전하며 간신히 중ㆍ고교를 고향에서 졸업한 뒤 71년 무작정 상경했다. 발길이 닿은 곳은 김포공항 근처.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공항 주변에서 구두닦이 생활을 2년여 하던 중 한국공항용역주식회사에서 운전기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전용사인 아버지 때문에 보훈대상자로 지정돼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다. 첫 업무는 활주로에서 화물기가 내리면 물건을 하역장이나 창고까지 실어 나르는 일이었다.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75년 한국공항공단(한국공항공사 전신)의 관리직으로 옮겨졌고, 이후 공항 운영부와 주차관리과, 의전과와 안전관리팀 등 공항 구석구석을 훑으며 근무했다. 어느새 그는 ‘김포공항 김 도사’로 불리웠다. 주변 사람들은 “공항의 소소한 업무까지 꿰뚫고 있어서 붙은 별칭이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두 여고생을 양녀로 입적해 학업을 뒷바라지해 몇 해 전 결혼까지 시켜주었고, 충북 음성 꽃동네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한센병 환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또 20년 넘게 교도소와 구치소 재소자에게 책을 사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매년 3,000여권씩 모두 7만여권의 서적을 기증했다.
그에게 남은 가장 큰 자산은 97년부터 2년간 공항 의전과장 재직시 국내외 귀빈들에게서 받은 사인과 글 등을 모은 6권의 앨범. 귀빈들의 입ㆍ출국 수속을 도와주며 방문소감을 써 달라고 요청했고, 이들은 간략한 답글이나 그림 등으로 김씨에게 보답했다. 2년간 77개국 150여명의 귀빈을 만났으며 그 중에는 다케시다 전 일본 총리,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사 회장, 축구황제 펠레 등 유명인들도 많았다.
김씨는 “한국을 찾은 이들이 좋은 추억을 안고 떠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공항생활은 행복했다”며 “무일푼으로 상경했던 촌놈이 이런 분들과 만나 악수까지 했으니 성공한 인생 아닌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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