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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廉恥라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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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廉恥라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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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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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 굵은 줄과 안쪽 가는 줄들이 잘 연결된 그물은 고기를 잘 잡는다. 가는 줄 기(紀)와 굵은 줄 강(綱)을 합쳐 기강이 됐다. 옛 중국 춘추시대 중원을 규합해 제(齊)나라를 세운 공신 관중(管仲)은 “나라를 세우는 것은 기강을 세우는 것이고, 기강을 바로잡는 것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중은 설명한다. 네 기둥이 버텨 한 칸의 집이 서는 것 같이 나라라는 거대한 망(網)도 4개의 기강(그물의 줄)에 의해 유지된다. 예(禮)의(義)염(廉)치(恥)가 그것이다. 관자는 이를 ‘사유(四維)’라 이름하고, 국가 존망의 원인으로 삼았다. 예와 의는 아는 얘기이고, 염이란 본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물질이나 권세에 물들지 않는 인격, 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을 뜻한다.

"나라에는 4개의 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끊어지면 기울고, 둘이 끊어지면 위태롭고, 셋이 끊어지면 엎어지며, 네 줄이 다 끊어지면 멸망한다. 기운 것은 바르게 하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키며, 엎어진 것은 일으킬 수 있으나, 일단 멸망하면 다시는 손 쓸 도리가 없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예와 의는 그렇다 치고, 염까지도 그렇다 치자. 그 동안 워낙 많이 보고 자주 듣지 않았는가. 이제 네번째 끈까지 끊어지려는 정황들이 속출하고 있다. 창피를 모르는 공직자들이 개인적으로도 부족하여 아예 집단적으로 기강을 끊어가고 있다.

지방의 공무원들이 평일에 근무를 팽개치고 시ㆍ군 합동으로 체육대회를 가져 민원인들의 원성을 샀다. 공익요원 1명에게 하루종일 사무실을 맡겨두고 자리를 비웠으며, 그에게 “(민원인들의) 전화가 오면 연수교육에 갔다고 답하라”는 거짓말까지 시켰다. 관계자는 “전화상담은 무리 없이 처리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산하기관 간부들이 서울월드컵 주경기장에서 친선 축구경기를 해 물의를 빚었다. 규정에 위배된 것은 물론이다. 경기장 측은 “전례는 없지만 서울시의 협조공문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시 측은 “시의회와의 관계를 고려해 사용승인 요청 공문을 보냈다”고, 시의회 측은 “예외규정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공직자들의 몰염치한 행태는 전국적으로 동사무소에서 중앙청사에 이르기까지 심심찮게 편집국 데스크에 전해진다.

한 국장급 공무원을 알고 있다. 그는 골프를 참 좋아한다. 사정기관 주변에 있는 그는 한동안 골프를 끊었다. 휴일이면 친구들과 마지못해(?) 필드에 나간다. 그러면 골프장 인근 식당에서 만나 그의 차를 식당에 놓고 친구의 차에 숨어 골프장에 들어가는 주접(?)을 떤다. 라운딩 후엔 그 식당으로 되돌아와 각자의 차를 타고 헤어진다. 그럴 때면 그는 “염치가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나마 염치가 있는 편이다.

24일 저녁 공무원들은 “GP 총기난사 희생 장병들의 영결식이 열리는 25일 하루동안 골프를 금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고위층이나, 이 때문에 골프를 취소한 공무원이나, 심지어 숨어서 골프를 쳤을 공무원이나, 그나마 염치가 있는 공직자들이다.

기강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군과 검찰 경찰, 공무원 조직에서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 권위의 시대가 사라지면서 불가피한 부작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염’과 ‘치’는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도 힘 든다면 ‘창피한 줄 아는 마음’은 놓지 말아야 한다. “엎어진 나라는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일단 멸망해 해 버리면 다시는 손 쓸 도리가 없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정병진 부국장 겸 사회부장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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