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을 정확히 밝혀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 부검 제도와 부검의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된 이원태(51)씨는 “부검의는 시신과 대화를 나누며 죽은 이의 원혼을 풀어주는 게 임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1988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뒤 당시 주임 교수의 권유로 부검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부검 자체를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짓’이라며 사인이 불분명한데도 병원에서 검안서 하나 달랑 받아 장례를 치르곤 하던 때였다. “부검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입니다. 병원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는 것도 보람된 일이지만 죽은 이의 사인을 밝혀 원혼을 풀어주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부검의 외길 인생 17년 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장을 찾았다. 89년 리비아 KAL기 추락사건을 시작으로 작년의 유영철 살인 사건 등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작년 말 동남아시아를 덮친 쓰나미(지진해일)로 태국에서 사망한 한국인 18명의 시신 확인을 하면서 한국의 부검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30여개 국에서 부검팀이 파견돼 각국 사망자 신원 확인에 한창이었지만 30~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시체 썩는 냄새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지문도 물에 불어 확인하는 데 대부분의 감식팀이 2시간은 족히 걸렸지만 이 소장팀은 손가락을 끊인 물에 넣은 뒤 드라이어로 말리는 기발한 방법으로 단
20분 만에 지문 확인을 마쳤다. 독일팀은 지문 감식 방법을 배워가기도 했다. “30여 개 국에서 파견된 팀들이 찬탄을 금치 못했지만 가장 뿌듯했던 점은 시신을 하루라도 빨리 가족 품에 보내드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뼈아픈 경험도 있었다. 부검 결과가 모호해 자칫하면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울 뻔했던 것이다. “죽은 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부검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남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또 현장에서 동떨어진 채 부검대 위에서 하는 부검의 문제점도 절감했지요.”
이 소장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부검의 처우 개선과 부검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를 감안하면 연간 3만여 건의 부검이 이뤄져야 하는데 실적은 6,000여 건에 불과할 정도로 사인 규명 없이 장례를 치르는 시신이 많습니다. 부검 인력을 늘리고 사건 현장에 부검의가 참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억울한 죽음이 줄어 들 수 있습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