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방부장관 인책을 놓고 한나라당과 한판 붙어보자고 나선 것을 언론은 정면 승부라고 논평한다. 그러나 이걸 국어사전의 풀이처럼 바둑 장기 따위에서 승패를 걸고 두는 마지막 승부수로 보는 것은 어색하다.
오히려 져도 대수롭지 않고 이기면 그야말로 대박인 꽃놀이 패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더라도 대통령이 바둑 장기판처럼 손 털고 일어설 일은 없다. 반면 부결시킨다면 여러모로 값진 승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영락없는 꽃놀이 패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애초 바둑판의 사석(死石), 죽은 돌과 다름없다. 노 대통령은 그게 왕조시대 발상이라지만, 총기난사 사건처럼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던진 사태에 장관 문책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고 헌정사의 오랜 관행이다. 따라서 설령 야권 공조로 해임안이 가결돼 부득이 장관을 바꾸더라도 새삼 크게 잃을 것은 없다.
위엄과 신망이 조금 더 손상된다고 해서 대통령 자리가 흔들릴 것도 아니다. 이걸 간파한 대통령은 윤 장관을 이를 테면 버릴 셈치고 작전상 두는 사석(捨石)으로 활용, 극적인 대세 반전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게 절묘한 꽃놀이 패라는 점은 달리 장관 적임자가 없다는 등 고심하는 척 하면서도 강한 전투의욕을 내보인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장관 하나를 놓고 ‘국민에게 드리는 글’까지 내놓은 것은 언뜻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는 듯 하다.
또 해임안 가결에 대비, 야당의 정략때문에 군 개혁이 어렵게 됐다는 인식을 미리 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역시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이 두드러진다. 왕조시대 발상 운운하며 야당을 자극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뒷받침한다.
■겉보기 기세 등등한 한나라당이 해임안 가결을 자신할 수 없는 사정은 꽃놀이 패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해임안 통과에는 민주노동당의 가세가 절대 필요하지만, 민노당은 어제 반대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은 위기국면에서 오히려 야당의 기세를 꺾을 묘수를 쓴 셈이다. 무모한 오기 정치라고 욕하지만, 필살의 암수(暗數) 성격이 짙다. 그렇게 승부 근성을 과시하는 것은 정치판 놀음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을 군에 보내고 마음 졸이는 숱한 부모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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