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지방자치 10년의 공과를 점검한 ‘지자제 10년_한국적 지방자치제의 뿌리를 내리자’ 시리즈를 끝내면서 자치단체장과 전문가 4명의 좌담을 마련했다.
권문용 서울 강남구청장(전국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 회장), 유승우 경기 이천시장, 이주희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행정자치부 자치인력개발원 교수),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이상 가나다 순)가 우리 지방자치 10년을 평가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10년의 평가
▦권문용= 지자제 도입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원화된 가치에 따라 사회가 튼튼해진 점을 들고 싶다. 예를 들면 지난해 탄핵 정국 때 엄청난 중앙의 정국 불안 상황과 달리 시민들은 평소와 같은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지방공무원들은 흔들림 없이 근무했다. 시민에 대한 서비스도 친절해지고 빨라지면서 주민들의 행정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갔다. 이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관선 시절에는 온통 전시성 행정 뿐이었다. 지방자치로 주민이 행정의 중심에 서게 됐고 선심성 행정은 줄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임승빈= 가장 큰 변화는 사장이 한 명뿐이던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가 234개 중소기업과 16개의 대기업으로 나뉘어 250명의 새로운 사장들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기초로 IMF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 중앙정부 하나만 있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지자제를 통해 우리는 지방의 창의력이 발현하고 지역경제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또한 자치단체로 작게 쪼개져 투명해진 덕분에 행정은 훨씬 깨끗해질 수 있었다. 이것이 지자제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중앙집권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나 노하우를 습득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지방정부가 주민들의 갈등 해결에 창의력을 발휘하고 집중하는 방법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유승우= 우리 지방자치제는 아직 유년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급한 평가는 섣부르지만 우선 단체장의 대민의식은 향상됐다. 지자제에서 단체장의 공과는 주민의 심판으로 평가된다. 지역이기주의 등 갈등은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본다. 일각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이 큰 일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데 그렇다고 중앙집권시대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갈등구조의 해결
▦이주희= 지방자치에서 이기주의와 갈등은 필요악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특정 시책에서 이익을 얻는 쪽이 희생이 따르는 쪽에 보상이나 배상, 안전장치를 보장해야 한다. 필수적인 공익사업이나 시설 설치시 손익을 조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 갈등을 치유하는 길이다. 지방정부 간의 갈등은 당사자가 나서서 협상할 일이지 국가가 조정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치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국가와 지방의 갈등도 필요악이다. 국가와 지방의 목표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도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이해해야 하며 일방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보상 시스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지방 감사
▦권문용= 아들을 분가시킨 어머니가 10년 후 며느리를 찾아가 그 동안 얼마를 썼느냐고 따지면서 “선심성 아니냐, 전시성 아니냐”고 꾸짖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지금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상대로 하는 감사가 같은 모습이다. OECD 회원국 중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대대적인 감사를 상시적으로 하는 곳은 없다. 지방공무원들은 1년 내내 여러 형태의 조사와 감사를 준비하느라 죽을 맛이다. 감사원과 중앙부처에 연간 약 130일 동안 감사를 받는다. 근무하는 260일 중 절반을 감사로 세월 보내고, 나머지 기간은 이를 준비하느라 보낸다고 보면 된다. 시민을 위해 일 할 틈이 없다. 이는 결국 지방자치제도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다.
▦유승우= 중복감사가 많다. 단체장도 뭘 할 수가 없다. 무슨 정책을 시작하려 하면 무조건 감사 대상이 된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면 감사를 받지 않는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감사를 해야 발전적인 것 아닌가. 또 중앙정부가 아니라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감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자체 재정 격차
▦임승빈= 지방정부의 경제력 차이는 지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인한 문제다. 1995년 일반회계 세입결산은 36조6,700억원이었고 2003년에는 96조로 늘었다. 하지만 지방의 지출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앙정부의 경제규모가 커진 것이기 때문에 지자체 격차는 중앙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지자제 도입 후 지역간 인구이동의 형태가 달라진 것?재정격차를 크게 벌린 이유의 하나다. 예를 들어 70년대 상경한 인구는 대부분 저소득층이었지만 90년대 후반부터는 지방 유지들이 많았다. 지방의 부가 서울 등 잘 사는 자치단체로 옮겨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렇게 부가 유출되면 지방정부는 복지 교육 문화 등에 투입할 돈의 여유가 없다.
▦이주희= 234개 기초단체와 16개 광역단체의 재정수준을 모두 같게 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정 격차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해야 된다는 주장이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되면 세원이 풍부한 자치단체는 재정력이 더욱 강해질 수 있고 세원이 풍부하지 못한 자치단체는 재정력 약화가 계소고대 결국 부익부 빈익빈의 굴레는 더 심화할 뿐이다. 현재 지방세의 탄력세율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지방세 징수를 최대화하는 노력은 기피하는 상황에서 국세의 지방세 이양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그것 보다는 국세의 지방교부율(현재 19.03%)을 더욱 인상하는 방법이 훨씬 타당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유승우= 이천시의 경우 도농복합도시라서 아직 비포장도로가 많다. 이를 포장하는데 돈이 다 나가다 보니 교육, 복지에 쓸 돈이 없다. 교부세 등 국가 지원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돼 결국 중앙정부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길들이는 수단이 된다. 중앙정부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
단체장 3선 연임 제한
▦권문용= 3선 연임으로 제한하는 것은 공무담임권 침해이고 시민들의 공직자 선택권을 막는 것이다. 국민이 자율적으로 맘에 드는 공직자를 고르는 권한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이는 지방자치의 기본정신에 위배되고 법리에도 어긋난 후진적 발상이다.
▦이주희= 공무담임권을 전체적으로 막는 게 아니라 연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한번 쉬고 다음 선거 때 출마해도 된다. 자치단체장 3연임 이상을 금지한다는 지방자치법의 규정이 헌법상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12년 동안 단체장을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에 선출되는 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에 3연임 이상 금지 조항의 철폐를 반대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적 지방자치를 위해
▦권문용= 우선 지자체장의 정당공천제가 배제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치구조 아래서는 일부 지역의 경우 공천하면서부터 돈이 오가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공천 받으려고 성금 낸 지자체장들이 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공무원들 승진인사 때 돈을 받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정당 공천의 배제는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임승빈=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대부분 지자체의 경우 일당독재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공천은 바로 당선과 이어져 거액의 헌금이 오가는 구조가 된다. 이런 이유로 정당공천제 배제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올바른 지방자치제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주민을 얼마나 가까이 행정으로 끌어들이고 함께 호흡하느냐가 관건이다. 주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갈등이 해결되는 메커니즘이 나온다.
▦이주희= 자치단체장 못지않게 지방의원의 활동도 중요하다. 능력있는 지방의원들이 선출되어 의정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해서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폐하고, 지방행정에 대한 대안적 비판 감시 기능을 행사하는 것은 지자제의 건전한 발전을 앞당기는 필수요소다. 그러나 현행 체제는 능력있는 지방의원을 선출하기에는 미흡하다. 지방의회가 유능한 인적 자원으로 구성되게 하려면 보수를 유급화하는 동시에 선거제도를 중선거구제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유승우= 주민들의 평생학습이 매우 중요하다. 주민자치센터와 여러 교육시설을 지자체가 많이 만들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지자체가 앞장서서 지방자치제를 이끌고 갈 주민들을 양성하고 시민교육에 힘써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주민들이 정치와 행정을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절실한 일이다.
정리=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