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1등 공신’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노무현 정권 탄생에 좀 기여를 했다 싶은 인물이면 무조건 ‘1등 공신’이란다. 취재원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런 건지 아니면 ‘1등 공신’의 수가 수십 명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나에게 ‘1등 공신’을 딱 한 사람만 꼽아 보라면 민주당 대변인 유종필씨를 들겠다. 왜 그런가? 그는 노무현 후보에 대해 적대적이던 김대중 정권 실세 인사들의 마음을 노 후보 쪽으로 돌려 놓거나 적어도 중립을 지키게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2001년 6월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유씨는 그때부터 민주당 경선이 본격화된 2002년 3월까지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노 후보에 대해 적대적인 시각을 반전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김 정권 사람들이 노 후보에 대해 가장 염려했던 건 ‘배신’의 가능성이었다. 그런 문제 제기가 나올 때마다 유씨는 노 후보가 김대중과 민주당을 배신할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노래를 불러대다시피 했다나….
"盧 배신 않을 것" 유종필이 설득
민주당 경선에서 노 후보에게 패배한 이인제 후보가 ‘청와대 음모론’을 제기한 것도 바로 유씨의 이런 필사적인 노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노 후보의 배신 가능성을 부정했던 유씨였으니, 그가 민주당 분당과 함께 노 대통령과 결별하고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건 당연하다 하겠다. 그는 언젠가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자신을 개혁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그런 배신을 ‘창조적 배신’이라며 긍정 평가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일단 여기선 노 대통령을 공(公)을 위해 사(私)를 버린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의인(義人)으로 간주하기로 하자.
문제는 그의 이중 잣대다. 어떤 경우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멸사봉공하지만, 또 어떤 경우엔 정실과 의리에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특히 인사 문제에서 그렇다.
이와 관련, 노 후보에 의해 ‘보석 같은 존재’로 불려졌던 유씨는 “노 대통령이 나를 포함해 측근들을 ‘동업자’라고 표현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치자금과 관련된 사람만 동업자였고, 나는 언제나 버림을 받을 수 있는 애첩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 모르겠다. 나는 노 대통령이 계속 멸사봉공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는 지키면서 살면 좋겠다.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건 민주당 대선 빚 44억 원의 문제다. 민주당은 이 건으로 여러 차례 항의 시위를 했다. 그런데 언론은 이 건에 대해 말이 없다.
노 정권이라면 못 잡아 먹어 안달하는 신문들도 이 건에 대해선 고개를 돌린다. 한국 신문들이 즐겨 쓰는 기사식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노 대통령과 여당에 문제가 있다거나 한마디 할 법도 한데 모두 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빚 나몰라라 할수야
민주당의 주장대로 “대선 빚 44억 원은 노무현 대통령 만드는 데 쓴 돈”이 분명하다면 여당이 어떻게 대응하건 관계없이 적어도 노 대통령만큼은 임기 중에 봉급 저축할 생각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그걸 갚아 나가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게 노 대통령의 ‘멸사봉공 정치 개혁’을 훼손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큰 과오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정치 노선을 따르지 않은 민주 인사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멤버들의 ‘민주당 죽이기’로 복수를 당한 셈이다. 노 대통령도 훗날 똑같이 복수를 당할까? 모르겠다. 그러나 ‘멸사봉공 개혁’이건 그 무엇이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는 지키면서 사는 게 자라나는 어린이 교육에도 좋으리라는 건 분명하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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