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판교 신도시에 관해 확정된 게 없다고 하지만 큰 가닥은 잡힌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여러 경로를 통해 정부가 흘리는 시그널은 ‘공영개발’이다.
대통령이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한 후 당국자들이 일제히 보조를 맞추고, 언론은 벌써 공영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실세인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박수를 보내고 있어 기류는 더욱 그렇게 흐르고 있다.
공영개발의 가장 원리주의적 형태는 정부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임대 내지 분양하면서 땅은 여전히 소유하는 것이다. 몇 가지 변형된 방식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국가가 사업주체로 나선다는 기본은 흔들리지 않는다.
주택공급은 민간의 몫이라는 관념이 오래 전에 자리잡았고, 판교도 그리 하기로 결정된 마당에 공영개발론이 돌출했으니 파장이 크고 논란이 거센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간건설업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 일색인 가운데 전문가들도 찬반이 엇갈린다.
언론으로서도 판단의 준거를 얻기 힘든 상황이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도 상당수 민간업계나 정부와 얽히고 설킨 관계에 있어 사심없는 직설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칫 관변학자로 이미지를 긁힐까 두려워 공개적으로 의사표시를 하기가 꺼려진다는 이도 있다.
더욱이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공영개발로는 강남수요를 대체할 수 없을 것, 누더기 도시로 전락할 것 등등의 비판이 많지만 사실 그것은 판교 신도시가 조성되고 자리를 잡은 연후, 그러니까 최소한 5년후쯤에나 판명될 일이다.
1980년대 공영개발된 과천 신도시, 90년대 임대주택 위주로 조성된 수서지구도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성패의 판가름은 한참 후에야 났다. 판교에 대해서도 지금 정답이란 있을 수가 없다.
다만 공영개발은 그 자체로 명암을 내포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나는 아파트건설비를 포함해 입주민의 주거비용이 낮아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큼 돈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영개발은 그야말로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재정지원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판교 땅을 매입하는데 수조원이 들어간다. 강남대체 효과를 노리며 아파트품질을 높이면 높일수록 나라재정의 주름살이 커지는 아이러니가 또한 발생한다. 그런 공영개발방식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면 ‘돈먹는 하마’가 전국 도처에 생기는 셈이다.
이것은 정부가 ‘시장실패의 교정자’에 그치지 않고 ‘시장의 지배자’로 나섰다는 논리다툼에 앞서 국가재정의 현실적 문제다. 참여정부 출범후 지난 2년반 나라 곳간은 활짝 열렸다. 국가채무는 계속 늘고, 흑자였던 통합재정수지는 올해 1분기 급기야 사상 최대 적자로 돌아섰다.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시점이 해마다 앞당겨지고 그 규모도 커지면서 다시 그것을 메우기 위해 추가로 짜는 예산(추경)이 지난 2년간 10조원을 넘었다. 그런데도 경제성장률은 대통령이 공언한 7%의 반토막 수준에서 오락가락한다.
더 많은 재정수요가 대기하고 있다. 행정중심도시 조성,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에 수십조원이 들어간다. 이 정부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각종 복지제도 도입에 얼마나 더 많은 나랏돈이 들어갈지 도무지 계산이 안된다.
클린턴 행정부가 쌓은 천문학적 재정흑자를 후임자인 부시 행정부는 불과 몇 년만에 송두리째 까먹고 이제는 거꾸로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가 말해주듯이 나랏돈 까먹는 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 하는 일이다. 참여정부는 경제성장도 제대로 못하고 부(負)의 유산만 물려줄 것인가.
송태권 경제과학부장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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