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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사랑에 관한 3色 소묘 '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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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사랑에 관한 3色 소묘 '에로스'

입력
200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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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영화 ‘에로스’는 감독들의 이름만으로도 시네필들의 귀가 솔깃해질 작품이다.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으로 국내에 많은 골수 팬을 지닌 왕자웨이, 26세 때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던 스티븐 소더버그, 9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창작의욕을 굽히지 않는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30분씩 짧은 시간이지만 여느 스타 배우 못지않게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세 사람이 만나 각자의 솜씨를 자랑한다는 점만으로도 ‘에로스’는 특별하다.

에로스라는 공통소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왕자웨이의 ‘그녀의 손길’(원제 The Hand) 편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견습 재단사 장(장첸)이 고급 콜걸 후아(공리)의 손길에 당황해 하는 도입부부터 숨가쁜 관능미를 보여준다.

영화는 자극적인 노출 장면 없이도 관객들을 격정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고, 입맞춤 조차 할 수 없는 두 남녀의 애처로운 몸짓을 통해 눈물을 떨구게 한다.

사랑과 고독을 담아내는 왕자웨이식 영상미가 여전히 빛을 발하는 매우 탐미적인 작품. 카메라는 그의 전작들처럼 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들의 미세한 떨림을 화려한 색채로 담아낸다.

색감이나 출연진의 의상, 시대적 배경 등이 ‘화양연화’ ‘2046’과 맞닿아 있어 이들의 속편이거나 단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소더버그의 ‘꿈속의 여인’(원제 Equilibrium)은 ‘사랑의 신’으로서의 에로스를 표현하기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정교하게 펼쳐내는 코미디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고혹적인 여인에 대한 꿈을 반복해서 꾸는 환자(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정신과 의사의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과 강박증세를 보여준다.

정갈한 흑백화면으로 처리된 현실과 화려한 칼라 화면으로 묘사된 꿈을 교차 시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안토니오니의 ‘위험한 관계’(원제 The Dangerous Thread of Things)는 부부의 성적 갈등과 욕망을 다루고 있다. 권태기에 빠진 듯 한 두 남녀사이에 관능적인 여인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성(聖)과 속(俗)은 한 몸이라고 주장하는 영화로 거장의 손길이 빚은 작품이라고 믿기에는 좀 투박해 보인다.

기승전결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현대인의 어두운 내면을 그려왔던 감독의 작품 궤적을 감안한다 해도 관객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불친절한 작품. 거장의 영상미를 기대했을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3인3색의 ‘에로스’는 이탈리아 한 프로듀서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안토니오니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에 감탄한 그는 안토니오니 감독을 존경한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던 왕자웨이와 소더버그에게 프로젝트 참여를 의뢰했다고 한다.

세 에피소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동양화와 거친 데생, 파스텔톤의 그림은 이탈리아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로렌조 마토티가 맡아 영화 못지않은 재미를 준다. 30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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