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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전지현 뇌세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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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전지현 뇌세포'가 있다?

입력
200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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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는 먼 발치에서 걸음걸이만 봐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은 모자를 눌러쓰고 허름한 옷차림을 해도 눈치채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날마다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는 우리는 어떻게 사람과 물체를 구별해낼까.

뇌의 시각영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뇌가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선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시각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 연구는 ‘분산’과 ‘집중’이라는 양극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분산 가설은 정보 해석을 위해 뇌의 전 영역이 고루 활동한다는 것이고, 집중 가설은 정보에 따라 뇌의 특정 부위만 반응한다는 것으로 서로 상반된다.

1967년 미국의 생물학자 제롬 레트빈은 ‘할머니 뇌세포’라는 애칭의 가설을 발표했다. 물체에 따라 뇌의 각기 다른 영역이 반응을 일으키는데, 할머니처럼 친숙한 이미지일수록 반응을 일으키는 면적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궁극적으로는 단 한 개의 뇌세포가 세상의 각각 다른 물체에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레트빈의 주장은 과학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설에 대한 후속 실험 등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아이디어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뇌는 극도로 민감한 부위인 탓에 연구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도 ‘할머니 뇌세포’ 가설을 미해결 상태로 남게 한 원인이 됐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과학저널 ‘네이처’는 최근 실험을 통해 ‘할머니 뇌세포’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실었다. 미 캘리포니아공대 계산ㆍ신경 시스템 연구소 로드리고 키로가 박사팀은 치료 경과를 보기 위해 뇌에 전극반응 측정장치를 착용한 만성 간질 환자 8명을 대상으로 시각과 뇌세포 반응을 연구했다. 연구팀은 8명의 환자들에게 약 30분 동안 각각 71~114개의 이미지를 보여줬는데, 대부분의 사진은 할 베리, 제니퍼 애니스톤, 빌 클린턴 등 유명 인사였으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파리의 에펠탑 같은 건축물도 포함됐다.

실험 결과 상당한 뇌세포가 특정 인물이나 건물의 사진을 봤을 때만 반응을 보였다. 예를 들어 한 환자의 특정 뇌세포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으로 유명한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의 이미지에만 반응했다. 레트빈의 표현방식을 빌리면 ‘애니스톤 뇌세포’인 셈이다. 이 세포는 30개의 사진 중 애니스톤의 다양한 모습을 찍은 7장의 사진에만 반응했을 뿐, 나머지 사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심지어 애니스톤의 전 남편인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그녀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줬을 때도 이 뇌세포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또 다른 환자의 뇌세포는 흑인 영화배우 할 베리에게만 반응을 보였다. 연구팀은 할 베리가 영화 ‘배트맨’에서 ‘캣 우먼’으로 변신하기 위해 얼굴을 모두 가린 사진과 알파벳으로 적힌 그녀의 이름 등을 환자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측정했다. 다른 사진에는 조용히 있던 ‘할 베리 뇌세포’는 베리와 관련된 사진에는 모두 확실한 ‘신호’를 보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진에 반응을 보인 뇌세포는 132개 중 51개였다. 38개는 애니스톤, 베리, 줄리아 로버츠 등 인물 사진에, 6개는 에펠탑이나 피사의 사탑 등 건물에, 5개는 특정 동물에, 2개는 특정 요리에 반응을 보였다.

케로가 박사팀의 실험 결과는 집중 가설의 대표 격인 ‘할머니 뇌세포’ 가설을 강력히 지지하는 셈이다. 분산 이론이 맞다면 많은 뇌세포가 극소수의 이미지에만 반응할 뿐 나머지 사진에 침묵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케로가 박사는 “이번 실험을 통해 뇌세포가 고루 활동한다는 분산 가설이 맞지 않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증명된 것 같다”면서 “그러나 뇌세포가 어떤 비율과 방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해선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실험 과정에서 8개의 세포는 두 개의 이미지에 반응했는데, 이는 한 개의 세포가 여러 개의 자극과 연결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면서 “세포 반응이 단순한 정보 인식 차원인지, 혹은 호감도 등 다른 변수와 연결된 것인지 밝혀내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덧붙였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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