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앞세운 매니지먼트사 영화계 주변부서 중심권으로
‘스타 파워’를 둘러싼 충무로의 갈등이 28일 제작가협회의 결의문 채택, 29일 배우들의 반박 기자회견 등으로 나날이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스타들의 출연료는 거품” “배우.매니지먼트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한국영화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영화제작사들과, “출연료, 지분요구는 시장논리에 따른 정당한 대가”라고 맞서는 배우.매니지먼트사들이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한국영화의 지각변동까지 예고하며 벌어지고 있는 ‘스타 파워’ 논쟁의 실체를 들여다보았다.
공룡 매니지먼트사 앞세운 스타파워
‘스타 파워’ 논쟁의 진앙지는 매니지먼트사다. 최근 매니지먼트사들은 한류 열풍과 이동통신사의 투자를 디딤돌 삼아 합종연횡을 거쳐 대형기업으로 도약하고있다.
“커지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대형 스타를 영입하는데도 억대의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제작사들과의 대외 협상력을 강화함으로써 지금까지 머물러 왔던 영화산업의 주변부에서 중심권으로 당당히 진입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스타 모시기’ 풍토 속에서 스타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근 예당엔터테인먼트가 3년 전속계약에 10억원을 들여 최지우를 영입한 것이나 나무액터스가 3억원에 김태희와 계약을 맺은 것이 단편적인 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니지먼트사의 수익구조도 악화하고 있다. 대형 배우의 경우에는 매니지먼트사 수입의 80%를 가져가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이 때문에 매니지먼트사들이 착안한 새로운 수익원이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모델을 제시한 싸이더스HQ가 2002년 ‘몽정기’에 공동제작을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주먹이 운다’ ‘잠복근무’ ‘파송송 계란탁’ ‘B형 남자친구’ ‘키다리 아저씨’ 등의 제작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물론 수익 배분 목적보다는 차제에 노하우 축적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영상산업의 주체로 나서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문제는 공동제작을 명분으로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속배우가 출연한다는 것 외에는 영화제작에 거의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적게는 15%, 많게는 50%의 수익지분을 요구하는 경우다.
C영화사 대표는 “매니지먼트사들이 많은 돈을 들여 대형배우를 영입했지만 실제로는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공동제작과 지분 확보로 손쉽게 손실을 만회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스타파워란 결국 공룡 매니지먼트 회사를 앞세워 이루어진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입지 좁아진 제작사
그러나 영화 제작사들이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공동제작을 감수하는 데는 투자와 캐스팅의 문제가 자리 잡고있다. 한해에 제작되는 편수에 비해 주연급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투자사 대부분이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대형배우가 캐스팅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당 3,500만원을 받던 배우가 2년 만에 3억5,000만원을 받게 된 것도 흥행배우의 희소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영화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영화의 2차 시장인 비디오 시장이 붕괴되고 불법동영상파일 때문에 지난해 500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사들은 극장수입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기획이나 배우가 아니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노종윤 노비스 대표는 “제작사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개발하고 여러 마케팅과정을 통해 관객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도 몇몇 스타가 좌지우지하는 영화시장을 만든 요인”이라고 자탄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스타파워 해법은/ "매니지먼트사 공동제작경우 전반적 위험 함께 떠안아야"
‘스타 파워’가 충무로를 쥐락펴락하는 것에 대해 영화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지나친 스타 파워는 그만그만한 기획영화를 양산 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전체 영화 산업에 독이 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영화는 여러 스태프와 배우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므로, 배우 위주의 영화는 결국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이유다.
감독 배우 제작자 사이에 건전한 긴장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결국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자신들이 거느린 스타 배우를 무기로 매니지먼트사들이 이름만의 공동제작을 내걸고 실질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는 시각들이 많다. 비즈니스의 룰에 맞지 않는 일종의 반칙행위로, 매지니먼트사도 영화제작의 전반적인 위험도를 떠안고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배우들이 제작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자신들의 제작사를 차리면 된다”며 “처음부터 기획하고 투자해 제작에 따른 수익뿐만 아니라 위험도 함께 지고 가는 구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스타들의 이름만을 앞세워 매니지먼트사가 자체 제작을 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경고가 적지않다. 입법조치를 통해 매니지먼트 사업과 영화제작 사업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만만치 않다. 이승재 LJ필름 대표는 “겸업 금지와 관련한 입법도 검토할 만하며 제작사의 요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눈앞의 흥행에 급급해 감독이나 배우만 보고 투자하는 투자사와 제작사에 대한 지적도 많다. 노종윤 노비스 대표는 “좋은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돈을 댈 줄 아는 투자사의 안목이 절실하다”고 했다. 매니지먼트사 한 관계자는 “요즘 배우들이 출연할 만큼 좋은 시나리오가 없다. 영화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배우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는다.
그 동안 제작사들이 투자사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스타잡기에 급급했던 구조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라제기기자
■ 최민식·송강호 회견/ "강우석감독 발언 악의적"
“얼마 전 소주를 한 잔 하러 갔습니다. 옆 자리에서 술 마시던 학생들이 싸인을 요청하기에 응했더니 그 중 한 명이 돌아서면서 이러더군요. ‘최민식씨 돈 너무 밝히지 마세요’.”(최민식)
“관객들 눈에 제 연기가 보이겠습니까? 입장료 중 송강호 몫은 얼마나 될까. 2,000원? 3,000원? 이런 생각을 할 거란 말입니다.”(송강호)
29일 영화배우 최민식 송강호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23일 강우석 감독이 이들 두 배우의 실명을 거론하며 “스타들의 높은 출연료와 무리한 지분 요구 때문에 영화 만들기가 힘들다”고 말한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강감독이 공개적인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최민식은 격앙된 목소리로 “강감독 발언에 악의가 있다”고 했다. ‘선생 김봉두’ 당시 주연으로 내정된 최민식 측이 개런티에다 추가로 수익지분까지 요구해 결국 주연을 교체했다는 강감독의 발언에 대해 그는 “이 작품과 관련해 강 감독을 만난 적도 없다. 제작사인 좋은영화사의 김미희 대표와 아이템 회의는 몇 번 했다. 수익지분 4%를 제안했더니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 나는 개런티만 받고도 출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었다”고 반박했다.
배우에게 지분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방침 때문에 송강호가 자신을 피한다는 강 감독의 말에 대해 송강호 역시 “만나자고 한 적이 없으며 4년 동안 강 감독의 시네마서비스에서 섭외가 들어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두 배우는 무엇보다 속물로 비쳐지는 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송강호는 “지금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촬영하고 있는데 총 제작비 120억원 중 5억원을 개런티로 받는다. 이게 지탄 받을 만한 액수인가”라고 되물었다. 최민식도 “매번 작품마다 유작이라는 각오로 한다. 그런 열정은 몰라주느냐”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한편 강 감독은 29일 밤 ‘최민식씨와 송강호씨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두 배우에게 공식 사과했다. 강 감독은 서한에서 “본의 아니게 최민식 배우와 송강호 배우의 실명이 보도돼 그들의 공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된 점에 대하여서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쉽게 치유되지 않겠지만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사실의 진위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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