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9)씨는 얼마 전 누가 몰래 자신의 재산내역을 조사했다는 사실을 통보 받고 깜짝 놀랐다. 다름아닌 매형이었다. 매형은 자신이 운영하는 문구점에서 문구류 7,000만원어치가 사라지자 처남을 의심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이 변호사는 곧바로 모 신용정보업체로부터 김씨의 재산내역을 건네 받아 매형에게 넘겼다.
하지만 이처럼 민사채권과 관련된 개인 신용정보는 반드시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하거나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매형과 변호사의 행위는 불법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재산내역 등 개인 신용정보를 불법으로 빼내 소송에 이용해 온 이모(59)씨 등 변호사 27명과 법무사 3명,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신용정보업체 직원 11명 등 모두 55명을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11곳과 신용정보업체 A, S사 등 법인 14곳도 함께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변호사와 법무사들은 사건 의뢰인의 민사채권이 상거래채권인 것처럼 신용조사의뢰서를 꾸며 신용정보업체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60여명의 개인 신용정보를 빼낸 혐의다. 이들은 민사채권의 경우 개인정보를 얻는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도 3~6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에 자신들이 사업자등록증과 상거래확인서 등을 발급해 상거래채권처럼 꾸몄다. 상거래채권은 변호사가 바로 신용정보업체에 의뢰하면 정보가 제공되고 기간도 15일이면 가능하다.
이들이 빼돌린 신용정보에는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채무자의 부동산과 자동차 등 동산 현황, 신용카드 연체 내역 등 대부분의 개인 재산정보가 들어있다. 이들 정보는 ▦사기사건 피고소인 재산에 대한 가압류 ▦폭행사건 합의금 가압류 ▦이혼소송 배우자 부동산 가압류 ▦상속재산분할소송 가족 부동산 현황 파악 등의 소송자료로 사용됐다.
또 신용정보업체 직원들은 불법인줄 알면서 건당 20만~3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개인정보를 제공했고 심지어는 이를 부추기기도 했다.
경찰은 일부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위한 법률 서비스로 생각했을 뿐 불법인 줄 몰랐다”고 주장함에 따라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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