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공동체는 우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적 단위를 뜻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한다. 나는 이에 덧붙여 심리적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려 한다. 심리적 공동체는 내가 희로애락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범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공동체의 한 극단(極端)은 전 지구상의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개념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구촌’이라는 표현 속에 담겨 있고, ‘예기(禮記)’의 대동(大同)사상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도 배태되어 있다.
다른 한 극단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공동체에 넣어주지 않는 것이니(사실상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 나는 그 사례를 로또 복권에 당선되었다는 한 ‘전설적’인 인물에게서 찾으려 한다. ‘전설’에 따르면 어떤 여자가 로또에 당첨되어 큰 돈을 벌었는데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돈을 펑펑 쓰다가 수상히 여긴 주위 사람의 신고로 당첨이 들통났다는 것이다.
행정구역 분리로 小 지역화
오늘날 우리는 지구 끝에서 다른 끝을 하루면 갈 수 있고, 각종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들의 심리적 공동체는 그리 커진 것 같지 않다. 비근한 사례로 나는 충청남도나 경상북도의 도청 후보지가 쉽게 결정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호남 고속전철 분기점을 결정하는 일도 매우 어려우리라고 본다.
나의 심리적 공동체의 크기가 충청남도만 하다면 충청남도의 어느 곳에 도청을 옮겨도 괜찮을 것이고, 공동체의 크기가 남한만 하다면 호남 고속철 분기점이 어느 곳이 되어도 상관없으련만, 나의 공동체는 실상 매우 작음으로 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지역이 도청 소재지가 되어야 하고 철로 분기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지역이기주의를 확고한 신념으로 삼기 때문에 공청회를 아무리 해도 도청 소재지와 철로 분기점에 관해서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정부의 정책도 심리적 공동체의 축소에 기여했는지 모른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거룩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행정도시 건설이라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지역과 지역 간의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도청 이전 논의의 원인행위를 제공한 광역시와 도(道)의 분리는 또 어떠한가? 대전과 대구의 문화적, 인구학적 뿌리가 각각 충청남도과 경상북도이지만 정부가 이 두 도시를 배경을 이루는 두 도로부터 행정적으로 분리해냄으로써 도는 대도시를 잃고 대도시는 모태가 되어온 도를 잃었으며, 결과적으로 심리적 공동체까지 좁혀졌다.
나의 생각으로는 필요한 것은 도청을 이전할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광역시를 통합하는 것이다. 도청을 새로 짓는 노력과 비용을 시ㆍ도를 통합하는 데 들이면 중복 행정에서 오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도청 이전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음은 물론 자연스럽게 심리적 공동체의 확장을 초래할 것이다.
최소한 한반도까지 넓혀야
우리나라가 웬만한 인구 크기와 경제 규모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큰 나라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가까운 중국에 가서 한국을 보라!). 이 작은 나라를 다시 잘게 잘라서 심리적 공동체를 작은 범위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정책이다.
우리들의 심리적 공동체가 하루 아침에 전 지구촌을 포함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하나의 도(道)를 넘어서 전 한반도를 포함하여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다. 시ㆍ도 통합이 우리의 심리적 공동체를 하나의 도까지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국가보안법 철폐와 6ㆍ15 선언 이행은 그것을 한반도 전역까지 넓히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이동인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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