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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제 10년-한국적 지방자치제의 뿌리를 내리자] (4) 방만한 지방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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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제 10년-한국적 지방자치제의 뿌리를 내리자] (4) 방만한 지방 경영

입력
200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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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대~한민국!”의 함성으로 가득 찼던 2002년. 많은 국민들은 2002년을 월드컵 4강 진출의 꿈을 이룬 해로 기억하지만 우리나라 풀뿌리민주주의 역사에서는 치욕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 해 3월 유종근 전북지사의 구속을 시작으로 5월 최기선 인천시장, 문희갑 대구시장, 심완구 울산시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광역시ㆍ도지사 16명 중 4분의 1이 불과 석 달 사이에 뇌물수수 혐의로 무더기 구속된 초유의 사태였다.

10년간 단체장 142명 기소

민선 1기 23명, 2기 59명, 3기 60명.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1996년 이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된 단체장은 올해 2월까지 142명에 달한다. 절반은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나머지 절반은 뇌물수수 혐의다. 현재 전국 광역시ㆍ도지사는 16명,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234명이다. 민선 2, 3기의 경우 이들 4명 중 1명 꼴로 기소된 셈이다.

선거에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경우가 많다. 지역 토호 행세를 하는 건설업자나 골재업자는 후보에게 뒷돈을 대준 뒤 공사 수주와 인허가, 인사청탁 압력을 가하고 거절당하면 비위사실을 수사기관에 흘려 ‘손을 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최근 선거법 위반으로 부인이 구속된 대전의 모 구청장은 선거를 도와준 한 업자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앙갚음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단체장이 축재 또는 차기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이용하는 주요 통로도 건설 분야다. 지자체마다 쉴새 없이 대형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공사를 벌어야 ‘떡고물’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패사건에 연루돼 직무가 중단된 단체장은 참여정부 들어서만 10명이 넘는다. 특히 지난해 수뢰 혐의로 구속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구치소에서 목을 매고, 인사청탁 및 납품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 전남지사가 한강에 투신자살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승진뇌물’도 여전

인사권을 틀어쥔 단체장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직원들을 비리의 공범으로 전락시킨다. 김행기 충남 금산군수는 요직에 배치해놓은 자신의 심복들을 시켜 공금 4,9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돼 최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임인철 전 전남 정무부지사는 2003년 건설업자로부터 1,100만원을 받고 수해복구공사를 이 회사에 주도록 부하 직원에게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

“사무관 승진을 하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 옛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강근호 전 전북 군산시장은 지난달 부하직원 5명으로부터 사무관 승진 청탁과 함께 1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이길영 전 충남 아산시장 역시 면장 임명 대가 등으로 직원 3명에게서 5,000만원을 받아 실형을 살았다.

제2기 충남 시장ㆍ군수협의회의 행태는 단체장들의 도덕적 해이를 극명히 드러낸다. 시장ㆍ군수들은 이 친목모임의 회비를 예산으로 납부한 뒤 임기말에 잔액을 수천만원씩 개인 호주머니에 챙긴 사실이 드러나 무더기 기소됐다.

지방의원도 떡고물에 눈독

자치단체와 단체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의 현주소는 어떤가. 지방의원의 비리는 단체장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의원들끼리 서로 사업을 밀어주거나 나눠먹기 식의 행태도 만연해 있다. 전남 함평군의회는 전체 의원 9명 중 4명이 지난해 7월 의장 선거에 출마한 A의원의 측근 사업가로부터 각각 2,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충북도의회 의원 14명은 3월 동료 B의원이 지분을 보유한 고추시장의 이전사업비 7억원을 전액 통과시켜준 ‘공로’로 B의원으로부터 1,500만원을 받아 태국관광을 다녀왔다. 대전 동구청과 동구의회는 최근 한 동사무소의 신축이전 부지로 구의원 소유 땅을 공시지가의 2배에 가까운 가격에 매입키로 결정했다.

의정활동 부실도 도마에 올랐다. ‘8개월간 집단 이석률 60%, 정족수 미달로 인한 의결보류율 67.9%, 지급된 의정활동비는 1억1,440만원’ 최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까지 부산 연제구의회의 의정활동을 분석한 자료는 지방의회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방의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유급화 및 유급보좌관제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도 자질 시비와 무관치 않다.

혈세만 날린 제3섹터 사업

이 같은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비리와 무능으로 주민 혈세는 줄줄 새고 지자체는 피멍이 든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민ㆍ관 합작의 제3섹터 사업은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씩 쏟아붓고 망한 경우가 태반이다.

충남도와 천안시가 99년 농협 등과 합작해 설립한 ㈜중부농축산물물류센터는 투입금액만 524억원에 달하지만 4년 만에 자기자본 잠식비율이 2배에 이르는 경영불능 상태에 빠졌다. 대표이사가 80억원을 유용해 구속됐고 결국 지방공사로 전환했으나 여전히 350억원의 부채를 떠안은 부실덩어리로 전락했다.

경남도?99년 ‘F-3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유치, 77억원을 들여 창원종합운동장에 서킷을 설치했으나 지난해 대회를 폐지하고 25억원을 들여 서킷을 철거했다. 부산시가 출자한 부산관광개발㈜은 97년부터 3년간 유람선 ‘테즈락호’를 운영했지만 50억원의 적자를 내고 배를 매각했다. 생수 붐이 일기 시작한 95년 전남도와 구례군은 지리산 샘물을 개발, 돈벌이에 나섰다가 8년 만에 물 한 방울도 팔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올해 초 감사원의 ‘지자체 제3섹터 출자법인 운영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03년까지 24개 지자체가 38개 법인을 설립했으나 대구복합화물터미널 등 29개가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경기 광명시의 KRC넷 등 6개 법인은 이미 자본잠식 상태다. 전체 법인의 누적결손액은 출자총액(2,712억원)의 절반이 넘는 1,283억원에 달한다. 특히 역대 제3섹터 법인 대표 98명 중 24명은 회사운영 경험이 없는 낙하산 관료 출신으로 나타났다.

대전참여연대 금홍섭 국장은 “단체장의 무절제한 사업을 막고 책임을 묻기 위한 주민소송제, 구상권 청구 등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재대 행정학과 최호택 교수가 지난달 대전시민 65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주민소환제 입법화에 대해 76.5%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 님비·핌피 현상 심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님비(NIMBYㆍNot In My Back Yard)와 수혜시설을 유치하려는 핌피(PIMFYㆍ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원전수거물처리센터 건립을 둘러싼 부안 사태는 님비의 극단적이고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님비의 수준을 넘어선 ‘어디에든 아무 것도 짓지 마라’는 바나나(BANANAㆍ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현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달 초 경기 부천시가 원미구 춘의동에 추진중인 추모의집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부천시장 집에서 “가족을 그냥 두지 않겠다”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해당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서울 구로구 등 인접 자치단체 주민들까지 반대운동에 가세하고 있다. 경기도가 판교신도시에 조성할 예정인 1만여평 규모의 메모리얼파크(장묘공원) 인근 분당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님비를 극복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충북 청주시의 광역소각장과 화장장, 전북 전주시 쓰레기소각장, 강원 양양군 폐기물종합처리장, 충남 연기군 쓰레기매립장 등은 지자체와 주민이 현명하게 대처해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혐오시설 건립을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 노인복지시설 확충, 상하수도 개선, 농로 포장, 수영장과 목욕탕 개설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시설 운영권까지 주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요즘은 오히려 님비보다 자치단체 간 핌피 경쟁이 갈등을 촉발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광역자치단체의 유치경쟁 1라운드가 끝나고 기초단체의 2라운드 유치경쟁이 본격화해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호남고속철 분기역도 충북 오창, 충남 천안, 대전이 몇년에 걸쳐 치열하게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님비와 핌피는 성숙한 지방자치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역이기주의에 쉽게 흔들리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주민의 성숙한 의식이 정착된다면 가장 바람직한 민주주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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