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사업 같은 수천억원대의 건설사업을 척척 시행하는 서울시, 도시철도 연장 건설예산을 이미 확보했다는 인천시의 소식을 들으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주민들은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문화ㆍ행정ㆍ교육 혜택을 차별적으로 받게 되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재정자립도 38.3%로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5위인 경남도의 한 예산 관계자의 말이다.
원어민 영어교사 초등학교 파견, 생태하천 복원사업 등등 주민 삶의 질을 높기 위한 몇몇 지자체들의 특화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반면 자체 재원으로는 소속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고, 다리 하나 도로 하나 놓기 위해 중앙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자체들도 부지기수다.
지자체별 ‘부익부 빈익빈’현상은 상징적으로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 넓게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충분한 세수에 자율적 재정 운용으로 중앙정부와 대등한, 어떨 때는 중앙정부를 넘어서는 위상을 갖게된 지자체들이 있는가 하면 중앙정부에 재정적으로 예속될 수밖에 없는 지자체들의 극명한 대비는 우리 지방자치 10년의 현실이다.
2002년부터 40억원을 들여 367대의 폐쇄회로(CC)TV를 관내에 설치한 서울 강남구. “CCTV를 설치해 우범자들을 다른 구로 쫓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남구는 그러자 올해 들어서는 아예 다른 자치구들의 CCTV 설치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희망하는 22개 자치구들의 설치비용 100억원의 절반 가량인 47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강남구는 지난해 원어민 영어교사 4명을 모집해 관내 초등학교에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관내 모든 초등학교(30개교)에 원어민교사를 배치할 계획이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250만~270만원의 월급과 16평 규모의 오피스텔 임대료는 모두 구 예산으로 충당한다. 이밖에도 TV를 통해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전자정부 시범사업(예산 29억원), 탄천 생태계 복원사업(260억원) 등은 다른 자치단체들은 엄두도 못낼 사업이다.
인접한 서초구도 강남구 못지않다. 서초구는 지난해부터 반포초등학교 등 관내 3개 학교에 인조잔디를 깔고, 초등학교 5곳에는 안전트랙을 깔아주는‘학교잔디구장 조성 및 걷기트랙’사업에 43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주민 주도 환경보호사업인 ‘우면산 트러스트’ 기금의 절반 이상인 17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2학기부터 관내 초등학교 20곳에 파견된 원어민 교사에게는 급료는 물론 의료보험료까지 구가 부담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에게 서울 강남, 서초구의 이 같은 행정은 “딴 나라 사정”이다. 지방세 수입이 거의 없는 지자체들은 꼭 필요한 사업을 하려해도 중앙정부와 광역단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5년 재정자립도 전국 최저권(8.3%)으로 지방세 규모가 78억원에 불과한 전남 강진군은 1997년부터 10년 계획으로 국가사적지인 ‘전라병영 성지’ 복원사업계획을 세웠지만 소요예산 340억원 중 168억원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10년도 모자라 2012년께나 완공을 기약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여건이 좀 낫다는 광역단체도 마찬가지. 재정자립도 72.7%로 광역시 중 가장 사정이 나아보이는 부산시도 부산신항 배후도로의 핵심사업인 북항대교 건설비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산시는 사업비 6,088억원 가운데 국비와 시비 각 2,030억원, 민자 2,028억원을 투입해 2009년까지 북항대교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지만 국비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려 4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지자제 실시 직후인 96년 전국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62.2%에서 지난해 57.2%로 낮아졌다. 지자체의 의존재원인 지방교부세는 95년 15.5%에서 올해 18.3%로 증가했고, 국고보조금도 민선1기(95~98년)때는 8%대를 유지하다가 민선2기(98~2002년)말에는 16.3%까지 크게 늘었다. 지방재정의 자율성이 악화하고 지방재정의 중앙에 대한 종속성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감사원의 지자체 재정현황 분석결과 지난해 250개 지자체 가운데 87.6%가 재정자립도 50%에 못미쳤다. 자체수입(지방세, 수수료 등 세외수입)으로 인건비도 감당못하는 지자체가 전체의 16%나 됐다.
설상가상으로 지자체 간 재정불균형의 편차는 커졌다. 대부분 지자체들의 재정상황이 악화한 반면 서울의 강남권, 전국적으로 수도권은 반대로 부익부 효과가 나타났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자체 세수입만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어 교부금을 받지 않는 지자체는 전국 11곳이다. 광역단체로는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기초단체로는 수원시 성남시 안양시 부천시 안산시 고양시 과천시 용인시로 모두 수도권 지자체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25개 자치구 중 시의 교부세를 받지 않는 자치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중구 4개 구로 강남ㆍ북이 뚜렷이 갈라졌다.
재정자립도가 높아진 지자체들은 정치적 영향력도 커져, 10년 사이 서울시나 강남구가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정도가 됐다. 관선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같은 격차는 자치단체장의 역량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방세수의 원천인 재산세가 보유세라는 점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0년대 이후 수도권의 땅값과 집값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격차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재산세 과표기준이 실거래가격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지자체간 재정불균형 편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지방재정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지방세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재 8:2인 국세:지방세의 구조를 6:4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는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20% 정도를 지방소비세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자치단체장들은 단순히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탈피해 스스로 세원을 개발하고, 수익사업을 벌이며, 세율 인상 등을 통해 세수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재산세 탄력세율의 경우 지자체장이 스스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부여한 권한이지만 일부 단체장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세율을 인하하는 데만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행정세제연구센터 이영희 소장은“97년 지방소비세를 도입해 지자체의 자주재원을 늘려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자치단체장이 재정에 책임성을 가질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지원금 교부에서도 인센티브, 패널티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예산 아끼기 묘안 골몰
지방세 비율이 20%에 불과한 현실에서 지자체들은 세원 확대보다는 세출을 줄여 예산을 아끼려는 아이디어 짜내기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규모가 작은 지자체는 인접 지자체와 기반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한다. 경북 영주시와 예천군의 공동소각로 건설이 대표적이다. 각각 건설할 경우 400억~500억원대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공동으로 건설하자 양측의 부담비율은 각각 60% 이상 줄었다.
경북 안동시와 의성군은 수돗물 공급협약을 맺고 영주시의 수돗물을 공급받기로 했다. 안동시는 정수장 가동률이 50%에서 70%로 높아져 연간 16억8,400만원을, 정수장을 건설하려던 의성군은 17억 700만원의 예산을 아꼈다.
울산시가 2003년 도입한 사전설계심사제도는 10억원 이상 건설공사, 2억원 이상 전기ㆍ통신ㆍ소방공사와 용역ㆍ물품구입시 계약금액의 5% 이상 증감이 발생하거나 주요 구조물의 공법 변경이 필요한 사업을 발주에 앞서 공법과 원가 등을 꼼꼼히 사전심사하는 제도. 지난해 99건(1,490억여원)의 발주사업에 대해 이 제도를 시행해 38억7,400만원(전체 공사금액의 2.6%)의 예산절감 효과를 거뒀다.
행정자치부는 지자체에 교부금을 줄 때 지자체의 예산절감 노력을 감안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송영철 교부세팀장은 “현재 전체의 10%선인 교부금의 인센티브 비율을 5년내 15%선으로 높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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