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60주년을 맞아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던 미국령 사이판섬을 위령 방문중인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 부처는 28일 한국인 전몰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을 전격 방문했다. 일본 천황이 과거 식민지지배 지역에서 한국인 전몰자 추모시설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이날 오전부터 ‘중부 태평양전몰자의 비’등 일본인 전몰지를 방문한 아키히토 천황 부처는 돌아가는 길에 한국평화기념탑을 찾아 묵도했다. 아키히토 천황부처는 또 미군 전몰자를 추모하는 ‘제2차 세계대전 위령비’등도 참배했다.
이날 예정에도 없었던 천황의 한국인 위령지 방문은 전날 사이판 한인회의 참배 요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궁내청은 “(한국 위령지) 방문은 천황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사전에 발표하지 않은 것은 그럴 경우 참배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고 (천황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아키히토 천황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참배’의 형식을 갖추며 패전 6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2차대전 전몰자 위령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사이판 여행은 아키히토 천황의 오랜 숙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되는 등 국내외 사정에 의해 전몰자에 대한 참배가 어려웠던 아키히토 천황은 ‘천황 만세’를 외치며 옥쇄한 일본인 전몰자의 넋을 위로하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패전 50주년이였던 1995년에는 오키나와(沖繩)와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 등을 위령 방문한 바 있는 아키히토 천황은 이번에 사이판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결국 성사시켰다.
아키히토 천황의 한국인 위령지 방문은 일면 긍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책임에 대한 진정한 성찰은 생략한 채 자신들의 희생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 무조건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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