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로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을 이양한지 1주년이 됐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무장 저항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어 향후 전망은 오리무중이다.
미국의 고민 ‘이라크 민주화’에 강한 의지를 블태웠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요즘 자국 내 철군 여론을 무마하기에 급급하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6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이 12년을 버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3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철군을 계획을 묻는 의원들에게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도 철수시한은 없었다”고 말해 이라크전이 끝 모를 수렁에 빠져들고 있음을 인정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24일 CNN에 출연해 “과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미군은 철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여론은 악화일로에 있다.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AP통신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10명 중 6명이 미군이 이라크에서 부분 혹은 전면 철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미군 사망자는 개전 이후 1730명을 넘어섰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26일 애가 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3~13일 바그다드 북부에서 여러 무장 단체 지도자들과 비밀리에 두 차례의 협상을 했다고 보도했고, 럼스펠드 장관은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저항세력의 공세 주권이양 1주년을 맞은 이라크에서는 경찰 시설과 군 기지 등에 자살폭탄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27일 오전 수도 바그다드 북쪽의 안타르 광장에 있는 파출소 주변 길가에서 폭탄이 터져 민간인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26일 북부지역인 모술에서는 수박 밑에 폭탄을 숨긴 트럭이 시장 부근 경찰서로 돌진해 경찰 10명과 민간이 2명이 사망했다.
모술 근교 이라크 방위군 기지 주차장에서도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군인 16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했다. 25일 사마라에서는 자살폭탄 차량 1대가 경찰 고위간부 집에 돌진해 9명이 사망했다.
과도정부의 주축을 이루는 시아파에 대한 테러도 계속되고 있다. 바그다드 서부의 시아파 거주 지역에서는 24일 사람들로 붐비는 카페를 박격포로 공격해 민간인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여전히 버티는 부시 전황이 계속 악화하면서 일부 공화당 의원들까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저항세력 진압 계획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아니면 철군 계획을 제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곧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군기지에서 미국의 이라크 개입으로 이 지역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되고 있다는 내용의 ‘버티기’ 대국민 연설을 할 예정이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 이라크 파병국 현황
“언제 이라크에서 발을 빼야 하나?”
이라크에서 떠나고 싶은 속내는 미군 뿐이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파병한 여러 나라는 이라크를 떠날 명분과 기회를 찾고 있다. 미군 추종 파병국의 국민들을 납치한 후 “당장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는 동영상을 내보내는 무장 저항세력의 협박은 끊일 줄을 모른다.
일부 파병국들의 조용한 철군 도미노는 이미 진행돼 왔다. 최초 36개 파병국에서 2004년에 이미 철군을 완료한 국가는 스페인 등 9개국에 이른다. 포르투갈(150명)과 몰도바(12명)는 올해 3월 미국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파병연장을 하지 않고 철군했다. 우크라이나(1,600명)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철군할 예정이다.
불가리아(450명)도 올해 말까지 철군한다. 폴란드(1,700명), 네덜란드(1,345명)도 파병연장을 하지 않고 예정대로 올해 중 철군할 예정이다.
그러나 영국 호주 일본 등 미국과 긴밀한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국내의 여론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얼마 전 총선 때 올해 말을 기준으로 예정대로 철군하겠다고 여론달래기용 입장을 표명했던 상태에 머물며 고민 중이다. 호주는 저항세력의 최근 호주인 인질 살해협박에도 불구하고 존 하워드 총리가 철군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미군의 오인 사격으로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자국 요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철군 여론이 비등하지만, 일단 12월까지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올해 12월에 다국적군의 임무가 종료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최대한 철군의 파장이 약할 시기에 공식적으로 철군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도쿄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홍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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