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평양에서 북한 노래를 불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가 부른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는 전쟁영화 ‘이름없는 영웅들’ 시리즈의 삽입곡이었다.
<남모르는 들가에 남모르게 피는 꽃 그대는 아시는가, 이름 없는 거치른 들길 우에 그 향기 풍겨올 때 그대여 알아다오, 이 내 마음을 고요한 별밑엔 나를 찾지 마시라 꽃피는 내가에도 눈바람 몰아치는 저 언덕 우에서 찾아다오, 모습을…유청장 노래에 지나치게 정색< p>남모르는>
이 노래에서는 정치적 선동성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서정성 짙은 연가라고도 평가되고 있다. 영화에서 이 노래는 외국 기자를 감시하면서도 속으로 사랑을 간직한 방첩대원 여주인공의 애틋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젊은이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고, 주민들도 가사를 줄줄 욀 정도라고 한다.
예전 북한에 한 달 정도 체류한 적이 있는 유 청장은 북 안내원이 즐겨 불렀던 이 노래 얘기를 꺼냈고, “한번 불러 보시라”는 요청에 따라 몇 소절을 불렀다.
북한 최고의 작사가로 꼽히던 고(故) 전동우가 쓴 이 노랫말은 우리말의 서정을 살린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리 뛰어난 가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건강해 보이지 않는 것은 감상(感傷)을 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감상주의는 이성적 사유를 마비 시키고 정서적 균형을 깨뜨린다. 대중의 문화적 감수성을 고양시키기보다 끌어내린다. 또 다른 정치적 선동성이 숨겨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유 청장 노래 보도가 나가자 각 정당의 논평이 잇달고, 여러 신문이 비난하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나 노래에 대한 공감 여부와는 무관하게,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하는 탄식을 누를 수가 없다.
그 만찬장은 6·15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고, 유 청장은 정부 대표단으로 참가 중이었다. 문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노래 요청이 있고 그가 몇 소절 부르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이념과 체제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북 사람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의 처신이 다소 경박했을 지는 모르나, 한낱 가십 거리에 불과할 그 일에 정색할 필요까지는 없다. 정말 그 자리에서 고위 공직자가 북의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되었을까. 오히려 고위 관료이기 때문에, 한층 더 남북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를 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서정적 노래가 전쟁영화 삽입곡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가 남북 간 체제 경쟁에서 이긴 마당에, 그의 노래 부르기를 인민군 찬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우리가 편협하고 경직되게 대응한다면, 자유주의가 자랑하는 다양성과 포용성, 우월성은 무엇인가?
그런 영화, 그런 노래가 바로 북의 문화다. 그것은 강대국 틈에서의 생존 방식이었다. 다름에 대한 상호인정과 존중이 남북관계 개선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와 같기를 주장하고, 다름을 배척해서는 관계가 개선될 리 없다. 만찬장에 참석한 북한 내각 참사는 우리의 ‘아침 이슬’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점에서 뿌듯함을 자랑할 이유도 없다. 그 기념만찬을 갖게 한 5년 전의 남북 공동선언문 4항도 ‘남북은 사회ㆍ문화ㆍ체육 등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간다’고 천명하고 있다.
다름을 배척하면 관계개선 안돼
자기가 일으킨 파문에 놀라, 유 청장이 두 번이나 사과한 것도 보기 좋지는 않다. 그는 그 영화의 줄거리도 몰랐다고 말했다. 성숙해 보이는 것은 ‘이제는 남한 사람이 북한 노래 하나 쯤은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던 민노당의 논평이다.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 개선의, 혹은 통일 길목의 삽화 같은 불협화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5년 전 선언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이 지켜지는 일이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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