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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연극 '매일 자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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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연극 '매일 자수하는 남자'

입력
2005.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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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네다. 웨이터 김정일입네다. 내레 환영을 만땅으로 해 드리갔시오. 여성 동무레 겁나게 이쁘누만요. 혁명적이야요!” 물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말이 아니다. 한물 간 54세의 나이트클럽 웨이터 박봉남이 인기 만회용으로 예명을 김정일이라고 바꾸면서 뜻밖의 소동이 일어난다.

극단 쎄실의 연극 ‘매일 자수하는 남자’는 국가보안법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 무대에 올렸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대학극이나 마당극, 비제도권 극단 등에서 국보법을 성토하는 내용의 무대를 만든 적은 있지만, 기성 연극계가 이 같은 주제를 전면에 대두시킨 예는 없었다.

극의 현실성은 박봉남의 가족사로 인해 한층 무게감을 얻는다. 그의 아버지는 여순 사건 때 빨갱이로 몰려 옥살이를 했고, 딸마저 반전 시위를 하다 구류 처분을 받았다.

또 본인은 해병대 근무 중 월북한 전력이 있는 데다 친북성 행위로 내몰릴 수 있는 언행을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사실 월북이란 것도 백령도 근무 중 파도에 떠밀려 경계선을 잠깐 넘었던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저런 상황이 ‘걸려면 걸 수 있는’ 형국이 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언행을 예의 주시하던 ‘당국’은 한창 인기가 치솟는 그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반국가단체의 수괴 이름을 따 공공연히 선전 선동하고 다닌 것만 해도 7년형 감이라며 수사관들은 그를 구타, 협박한다. 이 대목에서 무대는 군사 정권하의 취조실로 돌변한다.

고문에 시달리던 박봉남은 수사관들이 내민 종이에 눈 딱 감고 서명한다. 법정에서 국보법상 찬양 고무죄가 적용돼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결국 철창으로 끌려 간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세상은 바뀌었다. 집에서 TV를 보던 그는 자신을 고문하던 두 형사를 보게 된다. 그들은 북한이 청와대와 비공식 논의를 끝내고 돌아 가는 길에서 북측 인사의 안내역으로 등장했다. 감옥살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아니, 날 잡아 쳐 넣은 저것들이 이적 단체의 간부들을 안내하고 댕겨?”그가 철저하게 받은 국보법 학습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국보법상 7조(고무 찬양 동조), 8조(회합 통신 위반 등), 11조(특수 직무 유기 위반) 등을 버젓이 위반하고도 백주에 활보하는 인간들이다.

박봉남은 마침내 그들을 국보법 위반 사범으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가 재판정에서 벌이는 논리 공방은 현재 진행 중인 국보법, 통일 논의의 재판이다.

연극은 국보법을 둘러 싸고 철폐와 수정, 존속 등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현실을 다시금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말하자면 이 연극은 호들갑 속의 통일 학습 마당이라고나 할까? 성금호 작, 채윤일 연출, 장우진 신영미 최광희 등 출연. 7월 27~31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02)780-6343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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