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래 중 가장 비극적인 제목을 가진 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코 비운의 ‘블루스의 여왕’인 빌리 할리데이가 부른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일 것이다. ‘이상한 열매’란 백인들에게 목이 매달리는 린치를 당해 나무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흑인들의 시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빌리 홀리데이는 그 뜻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죄책감은커녕 재미있어 하는 백인들을 위해 재즈클럽에서 눈물을 삼키며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어느 날 교양 많게 생긴 백인여성이 다가와 “제목이 무엇이더라, 검둥이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섹시한 노래, 그 노래 좀 불러달라”는 노래신청을 받고 노래를 부른 뒤 무대 뒤로 나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려야 했던 아픈 기억을 회고했다.
미국의 한 기자는 1950년대 초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민권운동이 폭발한 60년대까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공공연하게 이상한 열매로 만들었다.
美 미시시피 버닝 단죄
문제는 인권단체와 양심적인 의원들이 린치행위 금지법을 만들어 200여 차례나 연방의회에 상정했으나 남부의원들의 반대로 매번 입법화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비극과 관련, 지난 13일 미국 상원은 린치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또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듯이 60년대 초반 민권운동의 열기 속에서 남부를 방문해 흑인들의 투표권 운동을 돕던 뉴욕 출신의 백인 대학생들과 현지 안내인 흑인을 살해한 극우 인종주의단체 관계자가 며칠 전 41년 만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미국판 과거청산’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청산 움직임은 미국에 그치지 않는다. 동구와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시절의 인권침해에 대한 과거청산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오랜 군사독재의 경험을 가진 제 3세계의 경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지난 14일 군사독재자 보호를 위해 80년대에 제정한 사면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멕시코 대법원도 이에 질세라 그 다음날 70년대 학생시위진압과정에서 집단학살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독재 정권들이 소위 ‘더러운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저지른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과거청산이 구 공산권이나 제 3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소개한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도 3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반인륜적 범죄로 규정하고 사과하는 법안을 제정한데 이어 최근에는 이 법안이 통과된 5월 10일을 노예제도 폐지일로 정하고 이를 초ㆍ중등 교과서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청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거청산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의 과거청산 움직임을 이처럼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시민ㆍ사회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노무현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과거청산 움직임에 대해 일부 수구세력과 언론들이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기르고 미래를 설계하기도 바쁜데 시대착오적인 과거 캐기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뒤로가기 아닌 세계화의 길
그러나 세계화시대에 과거청산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적인 추세이다. 아니 이들 비판세력이 좋아하는 표현을 빌린다면 과거청산이야말로 세계화시대에 문명국으로 가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리고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할 때 어찌 되는가는 국제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일본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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