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24일) 저녁. 중앙부처 모 국장급 간부는 퇴근 후 긴급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 지인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예정됐던 골프 약속을 황급히 취소하기 위해서 였다.
문자 메시지는 “GP 총기난사 희생 장병들의 영결식이 열리는 25일 하루동안 공직자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공직자들도 이날 밤 늦게까지 약속을 취소하고 ‘대타’를 구하느라 소동을 빚었다.
공직자 골프 금지령은 이해찬 총리가 희생장병 합동영결식 일정이 최종 확정된 24일 오후 긴급 지시해 전 부처에 하달됐다. 각 부처는 행여 골프치다 적발되는 직원이 나올까 비상연락망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골프 금지령을 전달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이는 최근 고위공직자들의 ‘골프 구설수’가 수시로 도마에 올랐던 점이 감안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총리부터 지난 4월 강원 양양 고성 산불 발생 때 골프를 치다가 비난을 자초했고 5월에는 해양경찰청장이 보트 사고 수습 전에 골프 휴가를 갔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에는 경찰 간부들이 현충일 날 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다.
이 때문인지 ‘현충일 골프’ 장소였던 경기 용인시 경찰대 퍼블릭 골프장은 25일 하루 동안 아예 문을 닫았고, 성남의 군 골프장인 남성대 C.C는 출입구에 ‘총리 지시로 공직자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이번 조치가 ‘골프 구설’을 미리 막아보자는 취지로 이뤄진 것이겠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총리가 일일이 골프 못 치는 날을 지정해줘야 할 만큼 공직자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골프 긴급 금지령은 우리 공직자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송용창 정치부기자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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