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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이어온 '공간시낭독회' 3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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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이어온 '공간시낭독회' 300회

입력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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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시를 낭독하는 일은 두렵고 또 조심스러운 일이다. 글이 아닌 음파(音波)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독자와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그 반응 역시 현장에서 감지하고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독자로서는 시적 화자가 아닌 시인의 발화로, 그 강약과 억양 휴지 숨소리 표정까지 입체적으로 전달 받을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그 일을 햇수로 27년을, 매달 꼬박꼬박 해 온 이들이 ‘공간시낭독회’이고, 그 행사가 29일로 우람한 300회를 맞는다.

낭독회는 구상(2004년 작고) 성찬경(75) 박희진(74) 시인의 주도로 1979년 4월 7일 출범했다. 그 날 저녁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극장 ‘공간 사랑(舍廊)’에는 150여 명의 청중이 모였고, 각자의 신발 주머니를 들고 사과 궤짝 같은 나무 의자를 옮겨가며 끼어 앉아 세 시인의 몸짓과 육성에 행복해 했다고 한다.

회를 거듭하는 동안 월례 낭독회에는 시인, 춤꾼, 소리꾼 등의 동참이 이어졌고, 80년대 시극(詩劇)활성화 등 시의 대중화에도 일조했다. 그간 ‘공간’에 초청된 시인만도 줄잡아 700여 명에 이르고, 작곡가 변규백씨 등 어떤 이들은 첫 회 행사부터 개근, ‘전속’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도 한다.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저런 곡절로 하여 행사 장소는 동숭동 ‘바탕골예술관’, 원서동 ‘북촌창우극장’,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기념관’으로 옮겨야 했다. 행사 경비 역시, 관(官)이나 출판사에서 도움을 받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 상임 시인들이 갹출해 충당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0명씩 들던 청중들은 근년 들어 30~40명으로 줄었고, 동료 예술계 인사 등 낯 익은 이들끼리만 모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행사 자체를 거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출범 당시 3명이던 상임 시인은 17명으로 늘었고, 장이지(29ㆍ현대문학 등단) 안현미(33ㆍ문학동네 등단)씨 등 20,30대 젊은 시인도 합류했다. 그래도 낭독회의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두고 노(老)시인은 시대를 탓하기보다 “우리는 과연 청중의 심혼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좋은 시를 발표했는가, 각자 개성에 맞는 시낭독술을 최선을 다해 개발했는가”(박희진, ‘略史’에서)를 반성하자고 했고, “굳은 의지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화려함과 편리함보다 깊이를 추구하는 마음들을 돌아보게 될 것”(성찬경)이라고 낙관했다.

행사의 궂은 일 도맡아 해 온 손현숙(46ㆍ현대시학 등단) 시인은 “지금껏 낭독회가 가난하고 조촐하게나마 이어온 것도, 그 옛적 오스만 제국의 세밀 화가들 만큼이나 지독한 선배들의 시 사랑에 기댄 성과”라며 “그 힘과 열정을 이어 가는 일이 우리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300회 기념행사 첫 자리에는 구상 시인의 딸인 구자명 시인이 고인의 작품 ‘그리스도폴의 江’을 낭송한다.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공간 낭독회의 내일이 구상의 그 강처럼 미래로 영원으로 이어지길 기원하며, 김종길 임보 이근배 이수익 문정희 노향림 유안진 천양희 이태수 장석주 고진하 장석남 김기택 박찬일 문태준 권혁웅 이덕규 등 시인들도 동참할 예정이다. (02)2277-4857~8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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