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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형제간에 부채 부쳐주기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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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형제간에 부채 부쳐주기 내기

입력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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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예전에 어른들이 말했다. 하지가 지난 다음 한 달 보름이 바짝 덥다고. 더위도 가마솥 김처럼 푹푹 삶는 더위가 있고, 너럭바위에 맨발로 올라선 것처럼 바싹바싹 달구는 더위가 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방에 있어도, 내가 즐겨 찾는 것은 부채다. 이 부채는 지난해 단오 때 선물로 받은 것이다. 펼치면 앞 뒷면으로 제갈량의 ‘출사표’를 가는 붓으로 부채살을 따라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전에도 같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걸 어른께 드렸더니 지난해 다시 부채 한 귀퉁이에 ‘소설가 이순원님께’ 라고 적어 이제는 누구를 줄 수도 없게 만들어온 부채다.

부채 하면, 빙긋이 웃음 속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그림 하나가 있다. 어릴 때 동생과 나는 자주 가위바위보를 하여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에게 열 번이나 스무 번씩 부쳐주기 내기를 했다.

그 내기를 하다 보면 결국엔 서로 더 덥고 짜증나고 화가 나는데도 그때는 여름만 되면 형제간에 ‘부채 부쳐주기’ 내기로 서로 애를 달구었던 것이다. 살살 부치면 살살 부친다고 트집잡고, 세게 부치면 세게 부친다고 트집잡고, 그러면서 우리는 자랐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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