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지방자치로 행정은 말 그대로 ‘서비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일부 단체장들이 표 욕심에 선심행정을 남발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과거 관선 단체장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주민을 위한 행정혁신을 실천할 수 있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일방통행하는 상명하달 시스템에서는 결코 불가능했을 갖가지 행정 아이디어들이 백출했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광주 북구는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 예산제’를 도입했다. 주민들이 직접 구 살림살이를 꾸리는 것이다. 80명의 구민 대표들이 예산편성위원으로 참가, 주민들이 인터넷 등으로 요구한 예산안을 검토하고 실제 주민생활과 밀접한 예산을 편성한다. 이를 통해 북구 주민들은 마을 산책로에서 음악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됐고, 장애인 대상 주말학교를 열었으며,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버넷 프로그램을 가지게 됐다. 주민참여 예산제는 재정 건전화, 행정 투명성 확보로 재정자치의 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남도는 ‘행정서비스 리콜제’를 도입했다.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업에 대해 20세 이상 주민 200인 이상의 연서로 도에 사업 철회나 시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대구 수성구는 ‘민원 배심원제’를 도입했다. 법률가나 건축사 등 전문가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행정처분이 주민에 피해를 주는 경우나 고질적인 집단민원, 주민 이해대립 등에 대해 이해당사자 의견을 듣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처리한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온 골프연습장, 가스충전소 신설 등 각종 인ㆍ허가 문제 150여건을 해결했다. 울산 북구도 주민 반대에 부딪쳐 3년 이상 끌어오던 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 사업을 ‘주민 참여 배심원제’를 통해 해결했다. 경북 안동시는 ‘주민 행정시찰제’를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매월 두 차례 주민 40명이 한 팀이 돼 하회마을, 매립장, 도산서원 등 주요기관을 방문해서 자치단체의 행정을 감시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충남도가 1996년부터 벌인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은 행정자치부가 도입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대구는 10년여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담장 허물기 운동’의 결실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던 도시 이미지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96년 대구 서구청과 경북대병원이 담장을 허물면서 시작된 이 운동으로 지금까지 학교, 종교시설, 주택 등 329개 시설 1만6,402㎙의 담장이 사라졌고 대신 7만7,500여평의 공원과 쉼터가 생겨났다.
담장 허물기 운동은 2002학년도 고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이제는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98년 개인으로는 처음으로 집 담장을 허문 김경민(42)씨는 “열린공간을 지향하는 시민과 지자체의 생각이 그대로 맞아떨어져 이 운동이 큰 호응을 얻는 것 같다”며 “덕분에 이웃도 많이 생겨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사회안전망
중앙정부도 각종 복지사업으로 지역 빈민층을 구제하고 지역경제를 살피고 있지만 역시 아프고 가려운 곳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지방정부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지역주민의 삶을 돌보는 사업들도 다양하다.
충북 청주시는 대형 할인매장에 밀려 고사 위기에 놓인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통에서만 통용되는 재래시장 상품권을 전국 최초로 발행했다. 2003년 12월 시장에서 쓰기 편하도록 5,000원권, 1만원권 소액권 두 가지를 시내 21개 새마을금고에서 판매하기 시작, 현재까지 15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재래시장 상품권 팔아주기 운동이 일었고,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당사자인 재래시장 상인들의 호응도 높아져 초기 800여개이던 가맹점포가 지금은 1,700여개로 급증했다. 청주시를 일부러 찾아와 재래시장 상품권 판매 및 운영관리 방식을 배워 간 지자체가 70여곳에 이른다.
서울 중구 직원 1,200여명은 단 한 명도 예외없이 3,000여세대의 차상위계층(국비 지원을 받는 극빈층 바로 한 단계 위 계층) 주민들과 짝을 맺어 이들을 후원해주고 있다. 성낙합 중구청장은 “처음에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겠냐는 주위의 시선도 있었다”면서 “막상 모든 직원이 빠짐없이 이웃돕기에 나서는 것을 보고 많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쌀이나 생활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는 ‘일대일 후원인 제도’ 외에도 독거노인 등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돌보기 위한 ‘방문간호사 1인 1동(洞)제’를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실시했다.
대전시는 두레(전통 농촌사회에서 서로 협력해 공동작업을 하던 풍습)의 개념을 도입한 복지 모델인 ‘복지 만두레’를 창안했다.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바탕으로 복지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뜻이다. 지역의 의사 간호사 대학 종교계 사회복지사 등이 스스로 참여해 소외계층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회원만 2,646명. 이들은 생활보호대상자와 결연해 안부전화 걸기, 말벗 되기에서부터 진료, 세탁, 학습지도 등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함께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지역축제의 명과 암
지방자치제와 함께 태어난 수많은 지역축제들은 비판도 있지만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방재정 확보에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에서 1년 동안 열린 지역축제는 공식적으로 900여 개에 달한다. 지자체 1곳당 평균 3.6개에 달하는 축제를 개최한 셈이다.
1999년 군청 직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전남 함평군의 나비축제는 해마다 전국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축제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올해 7회째를 맞은 이 축제는 7억원의 예산으로 무려 100여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08년에는 함평 세계 나비ㆍ곤충 엑스포 개최가 추진될 정도로 성공적이다.
경남 고성군의 공룡나라축제도 관광 오지에 가까웠던 이 지역의 이미지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고성군은 국내 최대 공룡발자국 화석지임을 내세워 공룡을 브랜드화하는데 성공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 97년부터 시작된 젓갈축제는 올해 문화관광부로부터 국가지정 문화관광 우수축제로 지정됐다. 이 축제에는 90여 젓갈상인이 참여하고 있으며 6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논산시는 젓갈축제의 경제유발 효과를 3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금산 인삼축제, 무주 반딧불축제, 안동 국제탈춤축제 등도 우수한 지역축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몇몇 지자체들은 유사한 지역축제를 경쟁적으로 개최하는가 하면, 표를 노리고 지역축제를 선심성 이벤트로 급조하는 경우도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217개 지자체가 축제를 이유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32억원에 달하는 기념품과 음식을 주민들에게 제공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자체는 법령의 근거에 따라서만 축제 관련 예산을 출연할 수 있는데도 강원도의 한 지자체는 축제 관련 예산 300여억원을 공무원들로 구성된 법인조직에 출연했으며, 수도권의 한 지자체는 행사를 위해 지원받은 정부 예산을 시상금 명목으로 참가자들에게 지급하기도 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지역축제 대부분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 축제는 전시행정의 전형으로 타락하고 있다”며 “자치단체장들이 사심을 버리고 지역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축제를 실속있는 문화이벤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는 최근 감사원의 지역축제 감사에 대해 “경제효과가 높은 지역축제는 결코 선심성 행정이 아니며 감사원이 지역축제나 기획사업을 중점 감사하는 것은 지방자치제를 위축시킬 염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양홍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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