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내 우울함은 불행한 운명 탓이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는 탈출구로 죽음을 택할 지도 모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친지들에게 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 심각한 우울증은 바로 그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된 원동력이 됐다.
미국에서 링컨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바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7월 4일자)에서 진실을 찾기 위한 링컨 연구의 르네상스가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헐리우드 최고 흥행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링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링컨(가제)'을 2007년 개봉하겠다고 밝혔다. 4월에는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링컨 기념 박물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
링컨은 오는 2009년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그럼에도 벌써 링컨 붐이 일고 있는 것은 이라크 전쟁, 종교 등으로 사회적 분열을 겪고 있는 미국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타임은 "정당한 전쟁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도자, 종교에서 직관을 얻되 판단을 세속적으로 내린 현명한 지도자에게서 배움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링컨 열기의 배경을 설명했다.
링컨은 미국에서 가장 추앙 받는 대통령인 동시에 가장 심각한 왜곡의 대상이기도 했다. 후세의 정치 집단이 이해 관계에 따라 링컨의 이미지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링컨 왜곡은 사망 직후부터 시작됐다. 1865년 4월 15일 포드극장에서 남부 출신의 존 윌크스 부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자 북부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의 분노를 남부에 대한 탄압과 보복에 이용했다. 공화당은 기독교 신자를 지지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링컨을 독실한 신자로 묘사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흑인 민권운동가들은 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링컨을 내세웠다. 실제의 링컨은 노예해방론자이면서 백인우월주의자였다. "백인과 흑인은 같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거나 "흑인은 미국 밖으로 나가길 바란다"는 식의 인종 차별 발언을 하기도 했다.
올해 1월에 나온 '링컨은 동성애자'라는 주장도 마찬가지. 심리학자 C.A.트립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내면 세계'라는 책에서 링컨이 20대 후반 때부터 절친한 친구 노슈아 스피드와 4년 동안 한 침대를 썼고 심지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경호 책임자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침대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남자끼리 함께 침대를 나눠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역사가 조슈아 울프 쉥크는 링컨의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링컨의 우울증은 가벼운 역사의 에피소드로 취급됐을 뿐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어린 나이에 여읜 어머니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심리학적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쉥크는 우울증이야말로 링컨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링컨의 우울증은 매우 심각해 실제 26세 때와 32세 때에는 거의 자살직전에 이르기도 했다"며 "링컨은 (우울증 환자)의 참담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기살기로 일했다"고 지적했다. 쉥크는 "바로 이 노력이 그를 빈농의 아들에서 변호사, 국회의원, 그리고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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