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친구와의 질긴 인연
예전에 대학입시고사를 봤을 때는 필기시험 한번 본 것으로 미리 지원한 대학 한 곳에 붙나 떨어지나 판가름하는 공포의 시기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간 곳은 강북의 전통 있는 여고. 앞줄에 앉아 있던, 등 밖에 안 보이는 수험생. 여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재수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살짝 고개를 돌린 그의 표정에서 고집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 적어도 삼수다!’라고 생각했다.
시험에서 나는 낙방했다. 하지만 후기대 시험이 있었다. 후기대 시험을 안 보고 재수하겠다는 내 말에 담임 선생님은 어디든 지원서 써달라는 대로 써주시겠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끈질기게 매달리셨다. 이번에는 붙었다.
신입생 모임에서 모르는 얼굴 사이로 한 녀석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그 녀석이었다. 고집스럽고 당당한 표정의 그 친구. 알고 보니 삼수는커녕 재수도 안 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김씨라서 학생번호가 매겨질 때 나는 008, 그 녀석은 009가 되었다. 나중에 친해진 뒤에 내게 하는 말이 내가 초등학교 첫사랑 여자애랑 참 비슷하다고 했다. “이 녀석아, 내가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말 돌려서 하긴!”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 친구와 나는 대학시절 내내 친구로 지냈다. 그 친구가 군대 간 뒤 휴가 나올 때마다 나를 불러내 밥값과 술값을 치르게 할 때도, 집에 전화해서 몇 시간씩 수다 떨 때도, 질긴 인연이 이어질 지는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이탈리아에 유학을 왔다. 그리고 지금의 신랑을 만나 밀라노로 이주했다. 임신한 뒤 밀라노에 사는 학교 선배들을 통해 그 친구가 밀라노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마누라를 한국에 남겨두고 혼자 개척의 길을 걸으러 왔다고 한다. 연락이 닿은 그 친구는 내게 비싼 점심을 한번 얻어먹고는 소식이 없었다. 밀라노 남동쪽으로 이사 온 후, 그 친구가 운영하는 민박이 바로 이 동네에 있다고 들었다. 어쩌다 슈퍼마켓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이번에는 그 친구 마누라와 함께.
웬일일까? 그저 아는 동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만난 그 친구와 나는 별다른 서먹함 없이, 얼마 전에 만난 듯 수다를 떨게 되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는 회사를 옮긴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내가 앞으로 다니게 될 직장의 고객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일 때문에 자주 연락을 하고 있다. 그 참, 인연이란.
http://blog.daum.net/elisalove/1793024
■ 엄마의 흰머리
내내 책상 앞에 붙어 있다가 잠깐 물 마시러 방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공부 쉬는 거니?”라고 하신다. “엄마, 왜?”하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시간 있으면 흰 머리 좀 뽑아 달라고 하셨다.
거울 보고 앞머리는 다 뽑았는데 뒤쪽에 난 흰머리는 못 뽑겠다는 것이다. 엄마 머리를 보는데 흰머리가 무척 많았다. 전혀 몰랐던 일이다.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하니 엄마가 그렇게 흰머리가 많냐며 민망해 하셨다. 그래서 “아니, 많은 것보다 마음이 아파서”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보이는 것만 뽑으라고 하셨다. 그래도 그것만 뽑아도 진짜 한 움큼은 될 것 같아서 속상했다. 엄마랑 간간히 이야기하며, 틀어놓은 TV도 봐가며 그렇게 30여 분 엄마의 흰머리를 골라냈다.
엄마한테 염색을 하라고 했더니 그건 싫으시단다. 아빠는 염색하는데 엄마는 왜 안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도 나중에 염색하게 된다면 싫을 것 같다. 염색은 나이 들었음을 절감하는 계기가 아닐까? 엄마의 흰머리가 늘도록 고생시킨 것도 나인 데다, 엄마가 늙으실 때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도 나인지라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엄마에게도 분명 나와 같은 20대가 있었을 것이고, 나보다 앞선 30대, 40대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 엄마의 앨범을 보면 정말 어린 엄마 모습에 웃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흰머리를 휴지에 올려 두었는데 엄마가 보시더니 20개도 넘겠다면서 후하게 값을 쳐주겠다고 하셨다.
“엄마, 하나에 50원?”하고 눈을 반짝였더니, “아니, 하나에 100원”이라고 말씀하셨다. “중학생 때는 흰머리 하나에 50원이었는데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나 봐”라면서 나도, 엄마도 깔깔 웃었다. 취직도 하고 돈도 많이 벌면, 우리 엄마 아빠 꼭 호강시켜 드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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