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이 세계 정상에 서 있다.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거목의 시대를 거쳐 지금은 군웅할거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쟁쟁한 기사들이 국내에 포진해 있다. 중국이 한국을 두려워하는 이른바 공한증은 축구 이전에 바둑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참으로 한국 바둑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때 한국경제도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눈부신 경제 성장이다. 잘살아 보자고 다짐했고 대체로 그렇게 됐다. 배고픔을 상징하던 보릿고개란 말은 옛말이 되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를 일으킨 것은 한강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렸다. 그러던 한국 경제가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1997~98년의 일이다. 경제 및 외환위기 때 말이다. 한국경제가 하루아침에 그렇게까지 추락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우리 바둑은 어떻게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는가. 필자는 이를 시스템의 승리라고 보고 싶다. 8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인 바둑대회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런 바둑대회에서 우승하면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누리게 된다. 때맞춰 국내에서는 한국기원의 연수생 과정이 바둑 엘리트를 키워냈다.
지금 바둑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사들은 절대다수가 한국기원의 연수생 출신이다. 한국 바둑은 경제적 인센티브, 엘리트 교육과 경쟁을 결합시켜 하나의 성공적인 시스템을 일궈낸 것이다.
한국 바둑의 성공은 정신력에만 호소하던 한국 축구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도입하여 세계 4강의 기적을 이룬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한국인의 잠재력은 애국심과 정신력보다는 경제적 유인이 결부된 ‘시스템’에 의해 발현된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바둑, 스포츠,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과연 사람은 경제적 동물인 셈이다.
바둑이나 경제나 한번 수를 그르치면 피해는 끝까지 간다. 한 수만 그르쳐도 공든 탑이 무너진다. 한 수 한 수를 원칙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바둑을 두거나 경제를 운용해서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즉흥적으로 수를 두어서도 안 된다.
가끔은 악수로 이어지더라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장고를 해야 한다. 좋은 수는 여러 수 앞을 내다보고 두는 수이다. 더 멀리 내다볼수록 더 좋은 수가 나온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다가는 대사를 그르치게 된다. 바둑이 그렇고 경제가 그렇다. 백년지대계란 교육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바둑의 정석은 경제학의 원칙에 해당된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된 바둑의 수가 정석이듯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끊임없는 반증의 위협을 견뎌낸 가설이 경제학의 원칙이다.
바둑에서 정석을 벗어난 변칙 수를 두어 가끔씩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대부분은 정석을 따르다가 예외적으로 변칙을 적용해야 먹혀 든다. 매번 변칙만 둔다면 통할 리가 없다.
새로운 정석은 수많은 기사의 피땀으로 정립된다.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새로운 이론, 새로운 정책이라고 떠들어대고 집행에 옮기면 판을 그르치게 된다.
선동과 구호 내지는 변칙이 경제와 국정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새로울 게 하나도 없던 ‘신한국’, 인류역사가 쌓아 올린 지식을 무시하는 듯한 ‘신지식’, 최근 아마추어들의 정책 건의 및 집행에 따른 혼선은 두고두고 복기할 가치가 있다.
물적 자본과 인적자본이 확충되어야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세계의 돈이 들어와 물적 자본이 커진다. 출산율을 높이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개선해야 인적자본이 는다.
해외의 인적자본을 끌어다 쓰려면 폐쇄적 문화를 개선하고 이방인을 적대시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준비 없이 되는 일도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도 없다. 잔꾀를 부리지 말자. 미사여구만 동원하지 말자. 원리원칙에 충실하여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자.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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